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결이 비슷한 드라마라서 이 두 작품을 유독 좋아하게 되었다.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을 소개해 보자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까지 성장한다.
등장인물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동안의 일들을 묻어 두기보다는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할 줄 알고, 서로의 관계에서 찝찝했던 부분들은 모조리 정리한다. 극중 악역을 맡은 사람들도 후반부에 갈수록 자신을 되돌아보며 잘못을 깨달아가고, 이들이 변한다면 선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둔다.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결말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자, 내가 이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다.
두 작품에서는 제각기 다른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보듬어 주는 분위기가 공통적으로 느껴진다. 상처의 크기가 크건 작건, 그런 건 상관없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은 보살피지 못했지만,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한다. 상처받은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므로.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며 ‘나는 괜찮아 보였겠지만 실은 괜찮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무감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깨닫고 비로소 표현할 줄 알게 되는 주인공들의 변화가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함의 순기능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닮고 싶은’ 인물이 등장한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은 과거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가 남아 있는 인물로 나온다. 어떤 여자는 어린 시절이 불우했고, 어떤 여자는 분위기를 읽을 줄 모르고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신분은 평범한 일반인이라서, 언뜻 보면 ‘나도 주변에 저런 사람 한 명쯤은 볼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 이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배경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데, 이런 내용이 너무나 잔잔해서 도파민 중독자들이 이 드라마를 처음 본다면 ‘이쯤에서 무슨 큰일이 하나 터져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할 것 같다.
나는 바로 그 점을 좋아한다. 그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그렇게 단조로워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끝까지 챙겨 본다. 솔직히 처음에 이 작품들을 볼 때는 그들의 잔잔한 일상을 부러워했다. 엄청난 일이 터지지 않는 삶, 자극을 좇지 않는 삶, 무언가에 쫓긴다는 압박 없이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삶.
평범한 주인공의 삶을 구경하며 등장인물의 처지와 마음에 공감하다 보면 드라마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위로를 많이 받는다. 당장 나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몰라 그저 막막하기만 한데, 앞으로의 날들은 밝고 행복하기만 할 거라는 미래를 그리는 결말을 볼 때면 나까지 응원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여주인공들이 모두 평범한 인물로 그려져서 그런 걸까. 작품 하나를 다 보고 나면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1인 나의 결말도 왠지 밝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이런 드라마 속 세상을 유토피아라고 말해도 될까?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확실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찾기 어려운 평범함이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압박을 느끼고, 잠시 멈추거나 그만둘 때면 루저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드라마를 보면서 작품 속 따뜻한 사회가 현실에도 남아 있기를 꿈꿨지만, 현실에서는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렵고, 서로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런 드라마에 더 애정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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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봤다. 평점을 보지 않고 무작정 정주행한 작품 중에는 초반에 재미있다가 결말은 새드 엔딩으로 나의 마음을 깨부순 것도 있었고, 내용이 꼬여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스트레스만을 안겨 준 것도 있었다. 그 작품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드라마를 보며 힐링하는 나로서는... 그런 작품을 보면서 도저히 힐링되는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자극적인 드라마는 보통 평범한 사람보다 조금 더 뛰어난 인물이 나오거나, 폭력적인 내용이 담긴 드라마가 많다. 일반 시민들보다 돈이 많은 부잣집 사람들의 막장 이야기, 범죄 사건을 다룬 이야기 등.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에는 이런 소재가 주를 이루지는 않는다. 이런 드라마는 마치 잘 편집된 브이로그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판타지보다는 현실적인 내용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토록 평범한 이야기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브이로그를 볼 때처럼, 남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듣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으니까.
드라마 취향은 사람들이 맵고 짠 음식을 선호하고, 간이 거의 안 되어 있는 건강한 맛은 그닥 끌리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자극적인 작품들이 시청률도 잘 나오니까 오히려 내가 보는 것들이 비주류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데, 나는 그래도 그런 작품이 좋다.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지루할지라도 느린 속도로 전개되는 작품, 꼬인 것 하나 없이 평범한 삶을 그린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긍정적인 분위기를 놓지 않는 작품.
자극만을 좇는 세상에서 1시간의 휴식을 주는 드라마가 더 많아진다면 좋겠다. 평생 비주류여도 좋고, 이런 작품이 일 년에 한 번만 나오더라도 좋으니, 꾸준히만 나와 주길 바란다. 나는 언제든 그 작품 옆에 돗자리를 깔고 1시간짜리 힐링캠프를 열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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