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 말을 걸 용기가 있었다면 대화로 쉬이 해결될 외로움이건만.
어린 날, 그 작은 용기가 없어 대책 없이 글쓰기를 시작하고 말았다.
-나의 글쓰기는, 무겁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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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의 부재와 외로움. 어린 내가 글을 쓴 계기는 이토록 무겁고 진지했다. 난 내가 불행하다고 느꼈다. 특히 그 불행은 어른들이 나를 야무진 소녀, 아니 ‘야물딱진 소녀’라고 말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야무지다’도 아니고 ‘야물딱지다’! 어릴 때부터 느껴왔던 이 단어의 느낌은 “자기주장을 위해 ‘야’ 소리치고, 안 되어도 이를 악‘물’고서 ‘딱’ 딱‘ 알아서 주어진 일을 해내고야 마는.”
야물딱져서 듣는 말은 주로 이랬다. 안수는 참 야물딱져. 자기 일은 척척 해내고. 공부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 돕고, 혼자서도 잘 다니고 말야.
이런 말은 아이들에게 반드시 상처를 준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아이는 없다. 관심을 덜 주어도 괜찮은 아이로 여겨지면서 나는 오히려 도움을 청하는 데에 용기를 내야하는 아이가 되었다. 스스로 ‘타고나게 자존심이 강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버텼다….
아니, 버티지 못했다. 꼿꼿이 고개 들고 살면서도 가끔 심하게 불안했다. 가장 괴로웠던 건 속마음을 말할 친구가 없다는 점이었다. 자존심을 필요 이상으로 세우는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날카로운 아이였다. 괴롭힘을 당한 건 아니었지만 괴로워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혼자 다니는 거 진짜 싫은데. 기죽어보이면 더 비참하니까 고개라도 들고 다니는 건데. 사실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는데. 나 친구 없는 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할 만한 대나무 숲도 사람도 없었기에 나는 속마음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안할 때마다 온갖 어두운 마음들을 작은 수첩 같은 곳에 연필로 빠르게 토해냈다. 그러고 나면 좀 개운했다. 그렇지만 나중에 다시 보려니 연필이 다 번져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이를 먹고 노트북을 사용하면서 메모장, 한글 파일에 쓰기 시작했다. 가족 공용이었기 때문에 누가 볼까봐 걱정했다. 한글 파일에는 암호화를 해두었다. 파일들을 ‘숨김’ 처리해놓고 폴더에 ‘숨김 항목 보기’는 항상 꺼두었다. 가끔 그게 켜져 있을 때면 내가 켜고 기억을 못 하는 건지, 다른 이가 한 건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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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못해서 속마음을 풀어놓던 캄캄한 글재주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 사소한 계기들 덕분이었다. 글 쓰는 사람들 모두가 한 번쯤 겪어보았다는 짜릿한 그것- 다른 이의 입에서 나오는 찰나의 칭찬의 말들.
중학교 1학년 때 독후감을 적어갈 일이 있었다. 흰 종이를 빽빽하게 채워놓고 책상 위에 두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엄마가 나를 깨우며 잠깐 읽어봤나 보다. “어떻게 글을 이렇게 잘 쓰니.” 이후로 엄마에게 보여준 글들은 혹평을 받을 때가 훨씬 많았지만, 그날의 그 말이 남에게 글을 보여줄 수 있게끔 나를 일으켜주었다.
세상에 내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뭔가 잘 풀리기 시작했을까? 전혀 아니다. 상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글 쓰는 게 참 괴로웠다. 문장 하나 건지자고 방구석에 하염없이 박혀있으니까. 다만 명백하게도 내가 해온 것 중에 가장 오래 한 행위가 글쓰기였다. 내 삶의 동반이자 내 가치와 존재의 증명. 이런 복합적인 맥락에서 작가소개 글이 이어진다.
(...) 그러나 글 때문에 더욱더 외로워지고 있는 듯하다. 블루라이트 차단으로 인해 누-런 노트북 화면을 멍하니 보며 자판을 두드리는 나의 삶. 제발 그만두자고 마음을 먹어도, 이젠 인생에 글이 없으면 그것대로 쓸쓸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