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안-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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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누구나 이왕이면 착한 사람이 되고 싶고 착하게 여겨지는 걸 좋아한다. 한바탕 못된 짓을 저지른 후 꼭 무엇에 씌웠었다는 둥 잠시 미쳤었다는 둥 열변하는 사람들을 보면, 착하지 않았던 순간의 자신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착한 나’를 깨부시기 싫어하는 일종의 자존감 비슷한 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착하고 싶어하고, 착하게 굴려고 노력하고, 그런 자신이 착하다고 굳게 믿는다.

 이는 대부분의 착하지 않은 짓들은 고의가 아니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사정없는 못된 짓은 거의 없다. 사람들의 안 착한 일들은 실수로, 감정에 압도돼서, 이성을 잃은 상황에서 행해진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끝내줘서 감사하다”는 그 유명한 조주빈의 말처럼, 우리가 나쁜 짓을 했다면 본래 의도와 반대되었고 비이성적이었단 이유로 ‘착한 나’가 아니라 ‘악마’가 한 거다.

 뭐, 이는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귀신이 시켜서 그랬든 감정이 격해져서 그랬든 원인은 한 번만 말하면 충분하다. 계속되면 변명일 뿐이다. 어쨌거나 일은 벌어졌고 과거로 돌아갈 능력이 없는 우리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못된 짓이 야기한 결과를 대처하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당신은 자신의 안 착함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나의 경우 스스로의 안 착함을 참을 수 없다. 따라서 나의 대처 방식은 채찍이다. 못된 짓을 저지른 후 나의 전부를 채찍으로 후려갈긴다. 너라는 사람은, 너라는 존재 자체는 정말 답이 없구나, 철썩, 철썩! 후회, 자책, 수치심, 자기혐오는 폭풍처럼 나를 집어삼키고, 그럴 땐 숨을 쉴 수가 없어져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거칠게 호흡한다. 과호흡은 내가 꼭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만족한 듯 잠잠해진다.

 엄마는 이런 나를 보며 ‘완벽주의자’라는 진단명을 내렸다. 빈틈없이 완벽한 사람을 기준으로 삼고 내 모든 행동에 적용하다 보니 조그마한 실수와 잘못에도 와르르 무너진다는 것이다. “야, 사람이야. 고작 사람이라고. 어떻게 매사에 잘할 수 있겠니?” 헉헉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며 엄마는 혀를 쯧쯧 찼다.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성향을 지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여자에게 인색한 현 사회는 여자라서 안 괜찮은 일이 남자라서 괜찮은 일만큼 많다. 주의 듣고, 꾸중 받고, 혼나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새 잘못이 많은 사람이 된 나는 엄격하게 다뤄도 괜찮은 존재가 됐다. 잔인하게 자학하다 보면 결국 착한 방향으로 가게 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었다.

 최근 깨달은 점은, 여자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자주 한다는 거다. 아주 입에 달고 산다. 언제는 아는 동생이 같이 밥을 먹는 동안 10번 이상 미안하다고 하길래 그만하라고 한 적도 있다. 가방 좀 치워줄래? 미안. 화장실 가려고 하는데 비켜줄래? 미안. 휴지 좀 줄래? 미안. 정점은 상에 국물을 조금 쏟자 미안하다는 말을 5번 연속으로 했을 때였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그 정도로 대역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여자들은 늘 밉보일까 전전긍긍 안절부절 못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남용하고 결과적으로 그 말의 무게를 본인이 다 짊어진다.

 착하고 싶은 우리들은 우리의 안 착함을 열심히 부정하고, 기왕 용기 내 직면하면 또 과하게 자신을 책망한다. 그러나 괴로운 우리가 간과한 단순한 진실은 착함과 못됨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란 존재는 영영 고정된 단어로 규정될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물결치고 요동하고 형형색색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의 행동은 연좌제처럼 따라오지 않는다.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믿는다면 변명하지도, 자책하지도, 주눅들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우리의 안 착함에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오늘 당신은 스스로에게 어떤 평가를 내리는가? 착했든, 못됐든 모든 평가의 유통기한은 단 하루면 충분하다. 오늘의 평가가 내일은 변할 수 있도록 애쓰는 당신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