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를 잃어버렸어요.”

 아이가 엉엉 운다. 나와 직원들은 마스크 안으로 작게 실소한다. 또 왔군. 베테랑 직원 언니가 아이를 이쪽으로 데려와 번쩍 안아 올린다. 언니가 아이의 이름을 물어본다. 아이들은 대개 웅얼거려서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일전엔 거나하게 울면서 자기 이름이 다비치라고 하던 아이, 알고 보니 한빈이었던가. 우리 모두 한때는 아이었던 바, 우는 것을 비웃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지금 이곳, 길을 잃은 장소가 우리에게는 다소 코미디인 것이다.

 “야! 너 왜 거기있어!”

 이번에는 10초컷이다. 어머니는 바로 앞에 앉아있었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얼른 아이를 받아 안는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앙증맞은 코를 꾹꾹 닦아주며 자리로 돌아간다. 직원들끼리 얘기한다. 여기서 길을 잃다니 너무 신기해요. 그러니까요, 에버랜드면 모를까.

 그래, 여긴 바로 서울시의 한 노후 건물 3층에 자리한 키즈카페. 매주 이 홀을 도는 우리 직원들에게, 이곳은 좁다 못해 답답하다. 나는 이미 갑갑해 미칠 지경까지 이른 것 같다.

b객관적으로 볼 때 이곳은 꽤 넓을 것이다. 문 뒤 벽에 걸린 사업등록증 같은 걸 보니 평수가 꽤 되었다. 이정도 평수가 집이라면 어마어마한 집일 것인데, 도통 넓어보이지가 않는다. 딱히 나만의 문제도 아닌 듯하다. 최근에 신입이 들어와 나와 동료에게 했던 말이,

 “여기 진짜 크네요.”

 -였다. 나와 동료는 순간적으로 서로에게 고개를 돌리고 갸우뚱했다. 정말 여기가 넓어요? 그가 끄덕이자, 동료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말했다.

 “나도 근데 처음에는 진짜 넓게 느껴졌거든? 근데 몇 시간만 일해도 엄청 좁게 느껴져요.”

 곧 생각이 바뀔 거에요, 동료가 신입에게 말하고 후후 웃었다. 과연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다. 홀을 청소하던 신입이 갑자기 내 근처로 슥 다가와 말했다.

 “벌써 좁아졌어요.”

 돌이켜보면 나도 처음엔 그랬다. 면접 보러 온 날엔 홀로 지원한 것을 후회할 정도로 넓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길을 잃는 어린이가 공감이 안 되는, 같은 동선만 빙빙 도는 여느 직원일 뿐. 이젠 공간의 규모를 감각함에 무척 무뎌지고 만 것이다.

 키즈카페뿐 아니다. 우리 가족은 최근에 가족 역사를 통틀어 가장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지난번 집의 거의 2배는 되는 파격적인 크기에 이사 초기엔 다들 흥분에 싸여있었다.

 “너무 넓어서 엄마 목소리가 안 들렸지 무어야.”

 엄마가 부엌에서 날 불렀는데 제때 못 나가면 나중에 촐랑이며 변명이랍시고 말했지만, 정말 잘 안 들렸다. 엄마도 내 말에 담긴 뉘앙스를 알아듣고서는 약간 배시시 했다.

 넓은 집에 미소 짓던 우리 엄마, 유감스럽게도 태세 전환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집에서 종일 드륵, 드르륵하는 소리가 종종 들려왔다. 엄마가 가구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다. 예전 집에서는 틈만 나면 하는 고유한 취미였다. 취미의 동기는 별 거 없었다. 엄마 뭐해, 하고 물으면 매번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번 집에서도,

 “어어 공간이 좀 답답해서.”

 -로 대답이 같은 것은 문제적이다. 이사 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얼굴에 의아함을 한가득 머금고는 그만하라고 엄마를 말렸다. 이 넓은 집에서 벌써부터 이러면 어떻게 살려고 그러세요. 나의 말림은 곧 뿌리쳐지고 엄마의 말랑한 팔뚝이 마음에 걸려 결국 엄마의 지휘 하에 노동에 휘말려버리곤 했다.

 당시엔 어이가 없었으나 더욱 어이없게도 몇 달 뒤, 나도 엄마의 말에 공감이 되기 시작했다. 그의 자식이라 그런 것인가. 혹은 인류라면 으레 그런 것인가? 나의 방은 삼면이 가구여도 예전의 2배는 되고, 거실은 작은 메아리가 칠 만큼 넓건만. 이상하게도 집이 너무 답답하다. 왜 점점 좁게 느껴지는가?

 도대체 공간이란 무엇인가. 큰 집에 살아도, 그보다 더 큰 공간에서 일을 해도 이리 쉽게 질려버리다니.

 -새로움을 잃어버렸어요.

 갈피잡지 못한 입 대신 마음이 답을 했다. 나는 문득 일하는 곳이나 사는 곳이나 거기에는 궁금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닿았다. 그 공간들의 모든 것을 꿰고 있는 나. 지긋지긋한 동선, 면면은 달라도 멀리서 보면 죄다 비슷한 것 같은 손님들 그리고 가족들. 알바와 집을 같은 길로 그저 왔다 갔다 하며 보내는 일주일, 한 달. 새롭고 신기한 게 없다. 나는 산송장이나 다름없다- 이 자각에는 절망의 냄새가 짙었다.

 새로움을 갈급해야만 한다. 이건 의무다. 나는 살아야 해. 일을 마치고 당연하게도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절망의 자각이 막아섰다. 일단 아무것도 모르겠으면 길에서 나오기라도 하자. 조금이라도.

 나는 반대방향으로 발을 돌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아무 버스나 올라타 창가 한 자리에 앉았다. 세상이 버스의 속도로 휙휙 지나간다. 알바의 잔상들이 드문드문 창 위로 떠오른다. 오늘도 어떤 아이가 아빠를 잃어버렸었다. 그의 아빠는 카운터 바로 옆 남자화장실에서 20초 뒤에 나타났다.

 불현 듯, 내가 엄마를 잃어 엉엉 울어본 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나 생각해본다. 목적지로 이끌던 엄마 손이 갑자기 사라지면 별안간 사위가 어두워지고 울음이 곧바로 차올랐었다. ‘무슨’ 상황이지, ‘어디’에 엄마가 있지, ‘언제’ 사라졌지, ‘어떻게’ 날 두고 갈 수 있지, ‘왜’ 엄마 손을 잘 잡지 않았던 거지. 갑자기 주변 사람들이 무서워지면서, ‘누구’지 이 사람들은, 마침내 울먹울먹 육하원칙이 완성될 즈음엔 어김없이 엄마가 나타나 나를 쑤욱 잡아당겼다.

 그때는 온갖 새로운 것투성이라 한 떨기 익숙함에 번쩍 구원받는 듯 했다. 이제는 다르다. 온갖 익숙하고 지겨운 것투성이, 한 떨기 새로움이 부디 반짝여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벌써 호기로이 올라 탄 버스조차 조금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물냄새가 날 즈음에 냉큼 하차했다.

 조금 걸어 근처 천(川)에 당도했다. 밖에 나가면 뭐가 있나. 확실히 변화가 있다. 지나온 6차선 도로에 끊임없이 몰려오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차량들. 매번 다르게 스치는 바람. 죽는 날까지 질리지 않을 하늘. 왜냐면, 계속 흐르니까. 움직이니까. 지구야, 너는 태양 주변을 도는 게 질리지도 않니?

 하늘, 하늘! 나는 벤치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혀놓고 아주 오래간 하늘이 흐르는 걸 지켜보았다. 파랑에서 약간 보랏빛, 서서히 흘러내리는 태양의 시간. 같은 색의 파랑도 같은 모양의 구름도 없어, 하늘과는 매순간 초면이다. 영원토록 너를 다 알지는 못하겠네. 변화무쌍함에의 압도. 저 별빛은 수억 년 전의 것. 바람처럼 휘감아오는 수수께끼들….

 문득 깨닫는다. 그러고보면 새로움이란, 나의 질려버린 천장을 벗어나면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구나. 아니, 나의 낡아버린 마음을 고쳐먹으면 궁금할 게 천지다. 세상이 이렇게나 움직이고 있는데. 왕성하다. 웅성웅성, 새삼 오늘도 참 많은 것들이 시끄러이 움직였었다.

 나는 나의 일터에 오는 아이들을 생각한다. 아이들은 그곳이 새로울 것이다. 그들은 직원들은 상상도 못하는 방식으로 노니까, 결코 멈추지 않으니까. 온갖 것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자석이 붙은 물건은 뭐든 붙여놓고 꼬마 자동차로 후진만 하다가 뒤통수로 넘어가 쿵… 하여간 어마어마한 녀석들. 어지른 거 치울 생각에 동료들과 폭 한숨을 쉬지마는, 지금은 그들이 참 대견하고 부럽다. 이 뉴비들은 여린 두 발로 세상을 누비며 매초 공간을 재구성한다.

 엄마도 생각난다. 집의 한결같음에 풀 죽고 기력도 죽는 나보다는, 가구를 움직이면 어떻게 달라질까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엄마가 훨씬 낫다. 단언컨대 가구를 들어 옮기는 그 힘은 호기심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물론 가끔 또 온갖 장식들을 늘어놓으면서, 

 “안수야, 나는 네가 설계한 미로 같은 집에 사는 게 꿈이다.”

 -하며, 청산이면 몰라도 미로에 살어리랏다, 살어리랏다… 하는 말을 듣고 있자면 우리 엄마지만 참 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열정이라도 있는 게 어딘가. 이젠 다른 가족들도 내심 엄마가 어떻게 꾸밀지 궁금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