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좋아... 근데 싫어... (2편)

2022. 8. 27.

네 번째 이야기가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착한여성들입니다.

네 번째로 들려드릴 이야기의 주제는 '길티플레져🙈' 입니다.

길티플레저는 어떤 일을 하면서 죄의식을 느끼는 동시에 엄청난 쾌락을 만끽하는 심리입니다. 너무 싫어. 그런데 좋아. 그런데 싫어… 끊임없는 굴레에 괴로워하면서도 이상하게 자꾸 찾게 되는 중독적인 녀석이 여러분도 하나쯤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 그게 싫을까, 그러면서도 왜 좋을까. 고민하다보면 그동안 살펴본 적 없었던 마음 깊은 구석 어떤 지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진 길티플레저를 완전한 플레져로 인정하거나, 삶에 있어 필수적인 아이템으로 등극시키기도 합니다.

길티플레저를 고백하는 일은 생각보다 부끄럽고 어렵더군요. 그런데 어느때보다 신이 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저희에겐 이것 자체가 길티플레저가 된 걸까요?

장래희망은 틱톡커이고 싫어하는 건 관종입니다

💃📷🤳

지금은 바야흐로 숏폼의 시대.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15초 안팎의 짧은 영상들이 쏟아진다. 사람들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고 수없이 많은 영상들 사이를 떠돌아다니며 짧게 웃고 짧게 찌푸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텔레비전 시대가 좋았던 것 같다. 가족들과 함께 커다란 화면으로 보는 TV는 지금 것들과 비교하면 건전하기 그지없다. 혼자 이불 속에서 보는 영상들은...불건전하다고 하기엔 뭣하지만 어디 내놓기에는 너무나 부끄럽다. 이게 바로 내 취향이라고 소개하기엔 너무나 싫은, 하지만 보는 빈도로 따지자니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하면 섭할 영상들이다.

숏폼에서 내가 유독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영상들이 있다. 주로 틱톡 춤, 챌린지 영상들인데 노래에 맞춰서 간단한 안무나 제스처를 하는 것이다. 이런 류의 영상의 포인트는 바로 표정이다. 이목구비, 고갯짓, 머리칼 모든 것을 동원해 치명적이거나 귀여운 표정을 지으면서 온갖 끼를 다 부려야 된다. 표정만큼은 아이돌 센터 압살이다. 거기에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한다는 듯 민망하게 웃으며 끝낸다면 더욱 좋다. ‘지글지글’, ‘락스타’, ‘콜록콜록’, ‘너의 눈동자의 취해~’ 이런 것들이다. (모른다면 꼭 찾아보길 바란다. 나만 고통받을 수는 없지.) 꼭 댄스가 없어도 가능한 것들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를 더빙하면서 배우처럼 표정을 지어주는 영상들도 있는데, 이건 멋있어 보일 만한 부분에서 배경음악과 필터 효과가 함께 깔리며 한결 오글거림을 더한다.

그런 것들을 몇 번 보다 보면 어느새 알고리즘이 잠식당하고 만다.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나 인스타를 들어갈 때마다 그런 것들과 마주치는 것이다. 나는 저항할 의지도 없이 클릭해 꼭 끝까지 보고 있다. 이어지는 다음 영상으로 웃음기 없이 슉슉 넘긴다. 친구랑 있을 땐 웃으면서 보지만 혼자 있을 땐 정색하는 얼굴로 열심히도 본다. 연예인처럼 끼는 부리고 싶은데 재능 없어서 데뷔 못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구만. 가성비 좋게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서 좋겠어. 하고 싶은 것 좀 그만해. (댓글에 멋있다는 칭찬이 달리면) 와. 진심인가? 초등학생이겠지? 마음속으로 하는 말은 악플 수준이다.

‘킹받는다.’ 이런 영상 모음에 간간이 달리는 댓글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다. 순수하게 이 영상을 즐기는 사람은 아마 성인 중엔 많지 않을 것이다. 킹받아하면서도 이런 영상을 보고 있는 게 나뿐만은 아니라는 것이 위안이 되기도 하다. 그렇게나 싫어하고 욕하면서 절대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의 정체란.

먼저 왜 킹받는지를 따져보게 된다. 남한테 피해를 주지도 않는 이런 춤과 표정 연기가 왜 싫을까? 예전에 지나가듯 본 만화에서 본 구절이 스친다.

“왜 나는 관종이면서 동시에 관종을 미워하는가?

왜냐하면 나에겐 관심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친구가 만약 2022년에 고등학생이었으면 틱톡이나 릴스 찍었을 것 같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당연히 질색하면서 절대 안 한다고 펄펄 뛰었다. 그러고는 조금 생 각하다가 말했다. 근데, 중학생이었으면 찍었을 것 같애.

인정하기 싫지만 그렇다. 나는 어느 정도 ‘관종’이다. 실은 안 그런 척하는 상당한 ‘관종’인 것 같다. 어쩌다 지나가는 시민1로 방송 출연을 하게 된 게 얼마나 영광이던지 캡처해두고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다녔고 내 이름이 웹사이트에 실리기라도 하면 자꾸 들어가서 보느라 그 글만 조회수 폭발이다. 내가 유튜브를 할 마음은 없지만 누군가 유튜브를 한다면 거기에 친구로 나오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이다. 스스로를 어필하고 관심을 끌려는 행위가 노골적인 것이 너무 싫지만 그 싫어하는 마음은 관심을 받고 싶다는 내 욕망에서 나온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유독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거기에서 자신이 가진 약점이나 단점을 발견해서 그런 거라는 말에 자주 찔린다. 결국 저런 춤을 찍어 올리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에서 비롯된 미움이냐고 하면 반 정도 맞는 말이다. 나도 춤을 찍어 올리고 싶어서 생기는 부러움은 아니고, 나는 우스워 보일까 봐 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한 반발심에 가깝다. 나는 참았는데 너는 왜 해? 일종의 자기합리화를 위한 미움인 거다.

별로인 내 모습을 똑바로 보는 것은 두렵지만 그것을 남을 통해서 변형된 모습으로 보는 것은 그렇게 두렵지 않은가 보다. 내 흑역사는 정말 떠올리기도 싫어하고 실제로도 거의 떠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그런 영상 속에는 내가 대놓고는 아니고 반쯤, 똑바로는 아니고 반투명하게 숨어 있어서 그런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꾸 쳐다보게 된다.

Instagram :: @22grzk

스콜세지 미안해

🎥👩‍🎤🍔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도 영화 한 편을 감상했다. 감상했다고 하기도 뭣한 게, 나는 평소 영화 한 편을 '감상한다'라고 하면 집에서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빔프로젝트를 세팅하며 영화를 감상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될 만한 것들은 없는지 두 번 세 번 재확인한 후에야 영화를 재생한다. 영화를 중간에 멈추고 딴짓을 한다던지, 존다던지, 배속으로 본다던지 이런 짓들음 엄격하게 금지된다. 지난 오스카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넷플릭스를 통해 배급된 자신의 작품인 <아이리시맨>을 두고 '관객들에게 제발 핸드폰으로 보거나 배속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한 발언이 놀림거리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이 일부로 아주 작은 MP3 화면으로(아직도 MP3를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도 놀라운데 난 그걸로 영상이 틀어지는지도 몰랐다...!) 영화를 보거나, 3배속을 해서 보는 영상을 올리는 등의 유행이 돌았던 기억이 난다. 스콜세지의 이러한 간곡한 부탁은 웃음거리나 영화감독의 선민의식쯤으로 여겨지는 결과를 낳았지만 나는 전적으로 스콜세지의 발언에 동의했고 이러한 풍조에 부들부들 떨었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감히 영화를 그것도 명장의 명작을 그런 식으로 보다니~

나의 그런 생각과 태도가 무색하게 넷플릭스에서 <강구바이 카티아와디: 마피아 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작품을 재생하게 되었다. 이름부터 유치하기 짝이 없으며 마피아 퀸이라는 소재가 나에게 거부감을 자아내기 충분했으나, 인도 영화 특유의 화려한 색채가 드러나는 예고편에 홀려 그만 핸드폰으로 재생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그렇게 도입부만 보려고 했던 마피아 퀸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고 상상 이상으로 유치했다. 심지어 나는 평소 작품의 윤리적 도덕적 요소를 중요시하는 사람인데 이 작품은 그런 요소와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더 보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고 넷플릭스를 종료했다. 잊고 있다 며칠 후 나는 다시 넷플릭스에 접속했고 보아버리고 만 것이다. 시청 중인 작품 목록에 떠 있는 <강구바이 카티아와디: 마피아 퀸>을. 그리고 볼 수밖에 없었다. 보면서 재미와 괴로움을 동시에 느끼며 껐다가 다시 보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1.5배속으로 폰울 통해 다 봐버리고 말았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는 결말의 메시지에 대한 어이없음으로 인한 실소와 탄식이 나왔고, 다 보아버렸다는 자괴감을 느꼈다. 그리고 더욱 자괴감이 드는 부분은 주인공의 서사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것에서 내가 만족감과 기쁨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약간 벅차기도 했는데, 이것은 인도 영화 특유의 화려하고 스케일 큰 연출을 통한 감동 뽑아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 덕분에 무엇인가를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스콜세지 감독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경험을 계기로 나의 영화 감상 습관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 경험이 너무 강력했던 탓인지, 아니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미 타락해버렸다는 데에서 오는 자기 파괴 본능인 것인지, 나는 넷플릭스에서 1.5배속으로 폰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물론 아직도 영화사에 중요한 작품이나 평단의 평이 좋은, 내 기준에서 중요한 작품들은 이전처럼 각을 잡고 보지만 상업 영화라던지 별로 기대작이 아니었던 작품들은 타임 킬링하듯이 후루룩 봐버리고 만다. 놀란 것은 이러한 영화 감상 습관의 변화가 순기능이 꽤 크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나는 영화 감상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물론 제대로 준비를 하고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영화 자체를 더 즐길 수 있고, 최적의 감상 조건에서만 얻을 수 있는 영화의 요소들도 있지만, 모든 작품을 그런 강박을 가지고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태도가 작품을 많이 볼 수 없게 해 나의 식견을 좁게 만든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친환경 유기농 재료로 만든 셰프의 코스요리만 먹는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인간은 살 수 없다. 가끔 편의점에서 인스턴트도 먹어주고 패스트푸드점에서 피자 치킨도 먹어줘야 삶이 재밌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의 영화 편식과 영화 감상 강박을 고쳐준 <강구바이 카티아와디: 마피아 퀸>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마피아 퀸 그녀는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 재밌는(동시에 괴로운) 2시간 33분을 제공해주었다. 물론 <강구바이 카티아와디: 마피아 퀸>를 추천할 수는 없다, 내 마지막 자존심이다. 허나 내 글을 다 읽어보고 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나 참을 수 없는 흥미가 생긴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상한 음식 가끔 먹는다고 죽는 것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