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이 군중 속에서도 담배를 뻑뻑 피워댈 때는 싫어하는 게 어렵지 않다. 문제는 지인들이다. 나는 웬만해서 주변인들이 하는 건 꼭 해보고 싶어 하는 성격이다. 분명 대학 입학 초기, 스물의 건축학기 동기들은 대부분 비흡연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헤비 스모커’가 되어갔다. 그 이유 또한 주변인들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재수생 동기들이 교수님과 함께, 설계 수업의 쉬는 시간마다 공대 앞에서 ‘담(배)타(임)’을 갖는 것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 점점 강의실에 남아있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물론 별 거 없는 얘기나 하겠지만, 내가 모르는 세상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몹시 초조해졌다. 나도 담배를 배워야 하나?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가 항상 그 앞길을 막았다. 안 돼! 지금까지의 ‘싫어할 결심’을 무너뜨릴 작정이야?!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이 되고자 참 애써왔다. 싫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행동을 심하게 과장하곤 한다. 마치 짝사랑을 접기 위해 부러 거칠게 대하듯 말이다.

 오빠가 PC방에서 담배 냄새라도 배어오면 마구 비난했던 중학생 시절. 내 앞의 흡연자의 담배 연기가 뒤로 날릴 때면, 숨을 참고 전속력으로 달려 흡연자를 앞지르던 수많은 날들. 아파트 입구의 흡연자를 (소심하게) 째려보던 날들.

 특히 건강과 환경에 항상 관심을 가지는 나였기에, 담배에 대한 작은 호감조차도 누르기 일쑤였다. 기관지가 약한 나에게 담배가 얼마나 유독할지 주기적으로 상상했다. 순식간에 폐가 썩을 거야. 폐암은 얼마나 고통스러운데. 담배 필터의 미세 플라스틱이 얼마나 환경에 안 좋은지에 관한 기사를 정독한다.

 싫어하겠다는 지난 의지들이, 얼굴이나 빼꼼 내민 호기심 앞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말한다. 담배는 백해무익! 시작이 곧 중독! 호기심은 금세 기가 죽어서 꼬물꼬물 다시 들어갔다.

 하지만 무언가를 싫어할 결심은 유리 같아서, 작은 계기만 있어도 순식간에 깨지고 만다. 며칠 전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배경은 내가 일하는 키즈카페. 여기에는 ‘파티룸’ 공간이 있고 주로 이곳에서 생일 파티를 한다. 사건 당일 오후 4시경, 생일 당사자의 어머니가 카운터 쪽으로 다급하게 걸어왔다. 파티룸은 얼핏 보니 전등이 꺼져 깜깜한 상태였다. 뭔가 문제가 생겼냐고 물으니, 아주머니가 다급하게 말했다. 혹시 라이터가 있나요? 생일 초에 불을 붙여야 해서요.

 모든 직원에게 라이터는 없었다. 생일 케이크 상자에 보통 성냥이 딸려오니 그걸 쓰면 되지 않나… 물어보려했지만, 아주머니 손에 들린 이미 죽어버린 성냥들이 보였다. 아주머니가 발을 동동 굴렀다. 혹시 주방에 가스레인지 없나요? 어머니, 저희는 인덕션이라….

 참 답답한 상황이었다. 젠장, 이대로 한 아이의 생일 파티를 망칠 순 없어!　그 순간, 갑자기 볼풀장 앞 테이블에서 아이들과 밥 먹고 있는 한 중년 남성이 눈에 띄었다. 키즈카페 직원으로서의 비장한 오지랖이 발동되었다. 어머니, 제가 손님들께 라이터 있는지 여쭤볼게요.

 서비스직에 미친 사람처럼 나는 라이터를 빌릴 수 있으리라는 강렬한 확신에 휩싸여 있었다. 망설임 없이 그 가족에게로 다가가 그에게 슬쩍 머리를 숙여 물었다. 실례지만 혹시 라이터 있으신가요? 저기서 생일 파티를 하는데 초에 붙일 불이 없어서….

 그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지만, 손은 재빠르게 가방 안에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죽 주머니를 꺼내고 있었다. 지퍼를 열자 고풍스러운 라이터 하나가 들어있었다. 참 멋있게 생겼다. 라이터를 건네받으며, 가슴이 온통 짜릿했다.

 라이터를 들고 깜깜한 파티룸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었을 때 본 풍경은, 흡사 문명 발생 전의 인류 같았다. 테이블 가운데의 케이크를 두고 아이들이 둘러앉아있었다. 케이크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은 어두침침하기 그지없었고, 불이 꺼진 장작을 두고 의논하는 부족민들 같았다.

 나는 외쳤다. 손님, 라이터 가져왔어요! 그때 마치 프로메테우스라도 된 기분이었다. 이래서 신에게 벌을 받을 각오를 하고도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주었던 것인가. 그 아주머니가 크게 기뻐하며 라이터를 받아 재빨리 케이크로 다가갔다.

 그 라이터는 멋진 디자인도 범상치 않았지만 진정한 면모는 아주머니가 도르륵, 불을 땡기는 순간 알게 되었다. 흔한 라이터들의 ‘쫑’하는 느낌의 조그마한 불이 아니었다. 거의 사람 코 만한 불길이 팍 솟아올랐다. 찰나에 어두웠던 공간이 화악 밝아졌다.

 나는 이유 모를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어머니들이 불길에 당황해서 허겁지겁 초에 불을 붙이는 동안 그 장면을 곱씹으며 라이터의 존재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보았다. 흡연자란, 이렇게 고도화된 현대 사회에서 불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구나. 참 기묘한 포인트지마는 거기에서 야생적인 매력을 느껴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서 알바 끝내고 라이터 하나 사서 담배에 불이라도 붙여 보았냐고? 대답은 노. 라이터에 마음이 흔들린 정도로는 20년간의 ‘싫어할 결심’을 극복하지 못했다. 흔들리는 스스로를 조곤조곤 타일렀다. 라이터를 들고 다니겠다고 담배를 피울 이유는 없어, 멍청아. 그냥 라이터를 들고 다니던가! 후, 정신을 차렸다. 이번에도 흡연은 단번에, 기각.

 싫어할 결심을 지키는 건 참 쉽지 않다. 최근에 본 <헤어질 결심>의 한 대사가 생각난다. 왜 이상한 남자와 재혼했냐는 질문에 주인공 서래는 답한다.

 ‘어떤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요….’

 하지만 모두가 안다. 대개 인생의 그런 결심들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결국 그렇게 될까? 결국은 이 결심을 지키지 못하게 될까? 그래도… 다시 결심한다. 꼭 죽을 때까지 담배를 피우지 않으리라. 오늘도 외친다. 담배는 백해무익! 시작이 곧 중독!

🎥🕳️🙅‍♀️

 나르시시스트, 자기 자신을 몹시 사랑하는 사람.

 모순적이게도 그런 사람은 타인의 사랑을 받기 어렵다. 자신에게 너무도 도취된 나머지 다른 사람이 내어 주는 사랑을 한사코 마다하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낮은 자존감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에 나르시시스트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들을 싫어한다. 아니, 혐오한다! 그냥 넘어갈 법도 한데 매번 그들의 말에 참지 못하고 분노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를 속 좁은 인간으로 타락시키고 몹시 소용돌이치게 만드는 나르시시스트, 그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아주 가까이서 찾을 수 있다. 바로 나의 아빠다.

 몇 가지 장면을 펼쳐 보이겠다. 테이크 원. 주말 오후, 우리 가족은 아주 평화롭게 TV를 시청하고 있다. 그러다 광고가 나오며 잘생긴 배우가 나온다. 예를 들어 엄마가 찬미하는 원빈이라 하자. 엄마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아유, 원빈이, 진짜 잘생겼다. 어쩜 저렇게 잘생겼지?”

 나와 언니는 엄마의 말에 동조하며 원빈의 얼굴을 찬양한다. 잘 생겼군, 잘 생겼어. 아빠는 가운데서 말없이 우리의 주접을 듣고 있다. 그러다 아빠가 불쑥 내뱉는다.

 “나도 잘생겼어.”

 내 머릿속에 물음표와 함께 이 말이 떠오른다.

 어쩌라고.

 어쩌라는 거지? 칭찬해 달라는 건가? 원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본인의 생김새를 어필하는 거지? 당황스럽지만 이 정도는 딸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아빠의 귀여운 투정쯤이다. 나는 아빠가 듣고 싶어 할만한 말을 해 준다. “그래, 그래, 아빠 잘생겼어. 잘 생겼지, 그럼.”

 그러나 그건 아빠가 원한 답이 아니었나 보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상한 듯 보인다. 딸이 아이를 우쭈쭈 달래는 말투로 말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아니면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답을 들은 게 자존심이 상했나? 아빠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이죽거리며 말한다.

 “내가 쟤보다 더 잘생겼어.”

 아무리 피가 섞인 아빠라도 이건 아니다. 아닌 건 꼭 아니라고 해야 하는 우리 집 여자들은 입을 모아 합창한다. 그건 아니지!

 아빠는 참 나, 허, 하, 소리를 내며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뒤로 젖힌다.

 “나도 젊었을 때는 쟤보다 더했어.”

 그러나 우리 집 여자들은 결코 지지 않는다.

 “응, 근데 아빠는 지금 안 젊잖아.”

 여기까지, 첫 장면이 끝났다. 이 장면이 단란한 가족이 하하 호호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으로 보였다면 큰 오해다. 아빠가 ‘나도’로 시작하는 말을 할 땐 결코 장난스러운 말투가 아니다. 당연한 사실을 보고한다는 듯 아주 진지하고 정확하게 의견을 표출한다. 우리가 장난으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성을 낸다. 내가 지금 농담하는 줄 아느냐고.

 아빠의 ‘나도 ~잘해’ 또는 ‘내가 쟤보다 더 ~잘해’ 시리즈는 이렇게 적용된다. 웃긴 예능을 볼 땐 “내가 쟤라면 ~해서 더 웃기겠다”, 연기 잘하는 배우를 볼 땐 “내가 연기 더 잘하겠다”, 요즘 유행하는 축구 예능을 볼 땐 “내가 쟤보단 더 잘 차겠다”. 의문형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야, 쟤가 진짜 잘생겼다고 생각하냐? 하하, 진짜 웃긴다”. 어떤 분야든 잘나 보이는 이가 등장하면지지 않고 자신의 잘났음을 강조해야만 하는 나르시시스트. 나는 언젠가부터 아빠와 TV를 보면서 불편하지 않은 날이 없다.

 테이크 투. 이번에도 가족이 거실에 모여 TV를 시청하고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TV에서 교양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출연자가 도시의 곳곳을 기행하며 동네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다.

 시골의 큰 정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전을 지지는 어머님들, 바닷가에서 해초를 따다 말고 인사하는 어르신들의 정겨운 풍경이 가득하다. 그 모습을 모두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맥을 딱 끊어버리는 말이 튀어나온다.

 “저거 다 사전에 미리 섭외한 거야.”

 역시나 아빠다. 모두가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대뜸 내뱉는다.

 “저 할머니 봐. 내가 장담하건대 오늘 아침에 미용실 다녀오셨다. 촬영한다고.”

 아빠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자연스러운 산책과 인터뷰를 테마로 하고 있지만 사전 협의 없이 무작정 촬영하기란 불가능하기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다시, ‘어쩌라고’다! 현재 우리가 재미있게 방송을 보고 있는데 그런 정보 따위 알고 싶지 않다. 아빠는 이처럼 상황에 걸맞지 않게 자신의 지식을 뽐낸다. 예컨대 <런닝맨>에서 지석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깔깔대며 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면 안 되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건 나르시시스트를 만만하게 본 거다. 아빠는 주목해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것 같으면 첫째, “어? 듣고 있어? 응? 응?”이라고 계속 묻는다. 둘째, 그래도 안 통한다면 상대방의 팔을 잡아당겨 자신의 쪽으로 가져와 흔든다. 마지막으로, 다른 이들이 하던 이야기를 완전히 끊어버리기 위해 소리친다. “내 얘기, 내 얘기!”

 한창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 뜬금없이 어제 다녀온 등산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는 아빠. 그럴 때면 나는 흰 도화지가 된 기분이다. 아빠는 내 얼굴에 대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일기를 쓰듯 휘갈긴다. 들어주고 싶은 마음도, 그럴 수도 없는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야 만다.

 20년 넘게 함께 산 노하우를 발휘해 열심히 응, 응하고 대답해주지만 눈빛은 멍을 때리고 있는 엄마를 보며 감탄할 뿐이다. ‘그런 척’이라도 할 수 있도록 단련된 엄마의 인내심이 대단하다.

 나르시시스트는 블랙홀 같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신 안으로 빨아들인다. 네가 하는 어떤 말이든 나를 중심으로 두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내뱉어지는 그들의 말은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사실상 나르시시스트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남의 인정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나 멋지지? 잘났지?’라는 말의 속뜻은 ‘나 좀 인정해 줘, 칭찬해 줘’와 같다. 나 잘난 맛에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외로운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르시시스트에게 외치고 싶다. 어쩌라고! 그럼 솔직하게 나 좀 예뻐해 달라고 이야기하면 될 것을 왜 재수 없게 콧대를 하늘 끝까지 세워 가며 말할까, 있던 동정심마저 다 사라지게. 수면에 비치는 자기 얼굴에 반해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는 나르시시스트. 그렇게 스스로가 좋아 미칠 지경이라면 그대로 혼자 살면 좋을 성싶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면에서 눈을 들어 바라보아야 한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는 꽃과, 나무와 그리고 저 멀리 서 있는 누군가의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