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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편식을 꽤나 하는 아이였다. 채소 중에서는 이유식 때 먹었던 시금치와 당근 빼고는 모조리 싫어했다. 버섯이나 가지 같은 건 당연히 입도 안 댔다. 우유 급식 때 받은 우유를 안 먹고 책가방에 뒀다가 실수로 터뜨려 혼나기 일쑤였고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겨울 음식 중 하나인 매생이를 죽도록 싫어해서 엄마를 서운하게 만들기도 했다. (엄마가 매생이를 사 오기만 해도 울었다.)

 입이 짧아서 키가 안 크는 거라는 핀잔을 매일같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난 단지 엄마 기준에서만 편식하는 아이인 줄로만 알았다. 엄마는 원래 못 먹는 음식이 없으니까. 싫어하는 게 아주 조금 있는 내가 이상해 보이는 거라고.

 세상 평균 기준으로도 편식이 심한 편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나서부터였다. 아이들이 환장하고 먹는 버블티, 쌀국수, 치즈 돈까스, 치즈 떡볶이, 크림 파스타, 곱창, 치킨, 닭발, 육회 이런 것들을 싫어한다는 것을 들킬 때마다 친구들이 “헐~왜?” 하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반응했기 때문이다.

 야자를 하면서 월화수목은 석식을 먹고 금요일은 친구들과 외식을 했다. 금요일 외식 메뉴를 정하는 건 나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나는 그날의 내 입맛과 기분과 상태에 꼭 들어맞는 최고의 메뉴를 정하려고 종일 고민했다. 하지만 나 혼자 먹는 음식이 아닌 이상 최고의 메뉴를 먹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메뉴를 제안하면 한 명쯤은 싫다고 하는 애가 꼭 나왔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퇴짜를 놓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기본적으로 원래 못 먹는 음식이 많은 데다가 그날따라 안 당긴다는 음식은 또 얼마나 많은지.

 탕수육은 고기는 좋은데 소스가 싫어서. 부대찌개는 국물은 좋은데 햄이 싫어서. 심지어 도시락 같은 건 싫어하는 메뉴가 아닌데도 급식 먹는 기분이 들어서 싫다고 했다. 친구들이 점점 ‘그럼 네가 먹고 싶은 게 뭔데?’, ‘하녕이만 통과시키면 끝이다,’, 이런 말을 하기 시작할 즈음 나는 내 편식이 남에게 폐가 된다는 걸 느릿느릿 인식하게 되었다.

 식습관이라는 건 사람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 왜, 어른들이 밥상머리에서 젓가락질 하는 걸로 사람을 판단하듯이. 내가 봤을 때 편식을 하지 않는 사람 중엔 삶의 태도도 마찬가지인 사람이 많았다. 일단 닥치면 해내는 사람들. 난 수학을 못해, 라고 말한 후엔 그러니까 수학 공부를 더 많이 해야지, 하는 사람들.

 반면 나로 말하자면, '수학을 못해. 그러니까 수학학원 관둬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 싫은 건 곧 죽어도 안 하는 사람.

 세 살 버릇 어디 안 간다고 어릴 때보단 덜하지만 지금도 편식이 없는 편은 아니다. 들깨 가루로 무친 나물, 콩국수, 미역 줄기 같은 건 여전히 안 먹는다. 꼭 먹는 것에만 한정되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과목에서는 일등을 했고 싫어하는 과목은 꼴등을 했다. 웬만하면 마이너스는 잘 안 준다는 수업에서 꿋꿋이 받은 C-. 돈 내고 간 영화관에서 두 시간 동안 자고 온 적도 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앞에서는 돌부처처럼 말이 없다. 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고 싶어서 입 다물고 있는 건 아닌데 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하나도 없어서 도저히 입이 안 열린다.

 불호가 많다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편식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본인이 고달프다. 못 먹는 음식 뭐 있냐는 질문에 싫어하는 모든 것들을 줄줄이 읊다 보면 물어본 사람의 얼굴이 점점 굳는다. 사람에 대한 심한 호불호는 더 위험하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웬만하면 잘 구분해낸다. 사람을 많이 가리는 사람은 그만큼 본인도 상당히 호불호 갈리는 대상이 된다. 그러니 싫어하는 게 많다는 건 안 그래도 살기 힘든 세상 에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이 남들보다 많이 추가된다는 것이다.

 원활하게 살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것을 조금 덜 싫어해 보려고 애써야 한다고들 한다. 아니면 싫어하는 것도 일단 닥치면 먹어치우는 고행의 과정을 거치거나. 그러고 나면 더 이상 그것들을 싫어할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다. 나중에야 안 것은 엄마도 어렸을 때 편식쟁이였다는 것이다.

 원래 뭐든 잘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니! 엄마도 고행의 과정을 겪었던 걸까. 어른이 된다는 건 삐죽삐죽한 호불호가 무뎌지는 일인 건지.

 나도 나이를 먹긴 했는지 조금은 그 삐죽함이 덜해졌다고 느낄 때도 있다. 우선 앞에서 언급한 못 먹는다고 했던 음식들을 지금은 다 먹는다는 점에서.

 커가면서 자연스레 먹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처음 먹기 시작할 때는 자연스럽기는 무슨 영 껄끄럽기만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분위기상 안 먹는다고 하기 뭐해서 한 입 두 입 억지로 먹었던 것들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내가 왜 전에 그 음식들을 싫어했는지, 무슨 맛이 그렇게 역했는지도 떠올려지지 않는다. 나랑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한 일들은 의식적으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때를 지나 지금은 싫어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졌다. 안 맞는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너무 재밌지 않냐고 괜히 오두방정을 떨며 자기 세뇌를 해댄다. 이 정도면 뾰족한 별 모양에서 구겨진 사다리꼴 정도는 되었다고 볼 수 있으려나?

 다행스러운 마음도 있지만 사실 이런 내 변화가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다. 자녀가 커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부모의 마음일까. 적당히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인생 살기에 적합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힘껏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이 조금 더 재밌긴 한걸. 아직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려고 노력할 에너지까지 뺏어다가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데에 쏟고 싶은 철없음이다.

 나보다 더 호불호가 심한 사람을 보면 쟤도 참 힘들게 살겠다 싶으면서도 참 재밌게 살겠다 싶은 이상한 양가감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데굴데굴 구르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시간은 계속 흐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나도 둥글둥글한 어른이 분명 되어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도 남몰래 바라는 것은, 둥글어져도 좋으니 너무 순식간에 둥글어지지는 않았으면!

 나는 잠수를 두 번 당했다. 두 번 다 며칠 후 연락이 오긴 했으나 연락 없던 그 며칠이 너무나 길었다. 잠수를 당하는 것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예고 없이 찾아오고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다. 가깝다고 생각한 이에게 잠수를 당하면, 상대가 물 안으로 갑자기 들어가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넘실거리는 검푸른 물을 바라보며 그가 언제 나올지 기다릴 수밖에. 그가 바닷속에서 보는 세계, 그의 하루, 그의 마음, 육지에 서 있는 나는 알 수가 없다. 바다는 넓고 깊기만 하다.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린다면 관계는 그대로 끝이다. 이런 식의 종결은 너무나 비겁하다. 짧든 길든, 유한한 인생의 일부를 같이 보냈다면 이유가 뭐든 끝낼 때 말로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겐 언어가 있다. 우리는 결코 타인을 이해할 순 없지만. 언어로 이해를 시도할 수 있다. 알 수 없는 마음을 더듬게 하려면 입술을 열어야 한다.

 처음 잠수를 당하고 다시 연락이 닿았을 때, 왜 그랬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이 겁나서 그렇다고 했다. 예상과 달리 나를 향해 커버린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시간이 필요했다고. 나는 한참을 웃었다. 그동안 마음 졸이며 했던 부정적인 추측이 하나도 맞지 않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수없이 고민하고 마음을 졸였던 순간을 이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차라리 솔직하게 미리 말을 하고 물속으로 들어간다면, 찰랑거리는 바다를 편한 마음으로 보며 기다릴 수 있었을 텐데.

 두 번째로 당할 때도 도통 적응이 되지 않던 잠수. 나도 그저 잠수타고 싶었던 적이 있었으므로 그 심리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것, 예측할 수 없는 타인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 관계를 재정비하는 것, 인간관계에선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으므로. 어떤 말은 커다란 사탕과 같아서 그저 입에서 버겁게 굴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잠수를 용납할 수 없다. 잠수를 타는 건 자신의 감정만 보듬으려는 이기적인 행위다. 알랭 바디우는 사랑은 타자를 향해 주체를 허무는 경험이라고 했다. 연인 사이의 사랑뿐만 아니라 친구, 가족 등 다양한 사랑의 형태 안에 있을 때 서로를 더 사랑하기 위해선 자신을 허무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겁이 나더라도 회피하지 말고 마음의 조각을 맞대고 맞춰야 함께 하나의 근사한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조금 유치하게 들려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세계는 잠수 금지 구역이라고. 살면서 세상으로부터 자주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잠수하더라도 내 앞에선 솔직한 얼굴을 드러냈으면 하는 것, 내가 사람들에게 바라는 건 그것뿐이다. 그런 용기를 가졌다면 사랑은 계속될 것이며 멈추더라도 소중하게 간직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