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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겠다. 일단 뛰고 보자.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열린 록 페스티벌, 사람들 사이엔 아슬아슬한 흥분감이 감돌았다. 3년간 강제적으로 숙성된 열기가 넘실거렸다. 조금만 건드려도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터졌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대 위쪽에 설치된 장치에선 물대포가 발사되고 그 아래에서 엉망으로 젖을 때마다 이성이 한 꺼풀씩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후 남은 건 딱 하나의 생각이었다. 다 모르겠고, 일단 뛰고 보자.

 페스티벌은 강렬하다. ‘락페가 장난이야? 놀러 왔어?!’, ‘나락도 락이다’, ‘퇴사’가 쓰인 높게 솟아 흩날리는 깃발들, 그 주위에서 서로 몸을 부딪치는 슬램, 무대와 가까운 곳에는 다닥다닥 붙어 서 있는 코어 팬들, 무대와 좀 더 떨어진 한결 여유 있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춤추는 사람들,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음악 소리에 맞춰 같은 리듬으로 뛰는 그 많은 사람들, 피크닉 존에 펼쳐져 있는 색색의 돗자리, 그 위에 앉아 먹는 음식과 시원한 맥주, 돗자리에 엎어져 있다가도 냅다 달려가 마음껏 춤을 추고 소리 지를 수 있는 무대 앞 공간. 내가 너무 사랑하는 페스티벌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페스티벌에 처음 간 건 코로나가 발발하기 바로 전 해인 2019년이었다. 우연히 한 인디밴드를 좋아하게 된 후로 그 밴드를 보고 싶어 가 봤던 게 시작이었다. 이런 신세계가 있다니 그동안 몰랐던 게 억울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페스티벌은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힘들었던 나의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사는 게 아니라 버틴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던 때, 페스티벌에서만큼은 마음껏 노래하고 소리 지를 수 있었다.

 그러나 유일한 활력소였던, 지겨운 일상을 버티게 해준 그 버팀목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코로나의 유행 때문이었다. 2020년 2월 이후 모든 공연이 중단되었고 페스티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직도 그 2월이 기억난다. 잡아둔 공연들이 전부 취소되던 달, 통장 잔고가 차오르는데도 마음은 자꾸 비어갔다. 그 후로 점차 제한적으로 공연이 재개되었지만, 페스티벌만은 열리지 않았다. 다수가 모여야 하며 밀집된다는 특징 때문이었다.

 페스티벌뿐만이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활동이 축소되거나 중단되었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었기에 개인 시간이 예상치 못하게 늘어났다. 갑작스럽게 늘어난 시간이 지루했던 나머지 새로운 행동을 하게 되었다.

 우선 구석에 방치되어있던 테이블을 창문 가까이 옮겨 놓았다. 카페에 가기조차 어려웠으므로 카페 느낌을 조금이라도 내고 싶어서였다.

 그러다 보니 커피에 관심이 갔고 원두를 직접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 원두를 갈아야 했으니 원두를 가는 핸드밀이 필요했다. 원두를 담을 드리퍼와 커피 필터도 갖춰야 했다. 균일한 물줄기로 커피를 내리는 게 좋다는 말에 입구가 좁은 드립용 주전자도 구매했다. 그렇게 그해 봄엔, 내 삶을 통틀어 최초로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시는 건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매일 마시다 보니 처음엔 이름조차 생소했던 원두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원두는 신맛이 많이 나는구나, 내추럴 방식으로 가공한 원두는 과일 맛이 강하구나, 로스팅 강도에 따라 원두 맛이 달라지는구나. 원두에 대한 선호가 생기기 시작했다.

 커피를 내리는 방식에 대해서도 알아갔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릴 때 원두의 크기를 크게 갈수록, 물의 온도를 낮출수록, 속도를 빠르게 할수록, 커피의 신맛은 강해지고 쓴맛은 약해진다.

 이런 차이를 신경 쓰며 정성껏 커피를 내리는 게 즐거웠다. 아무리 우울해도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으로 침대에서 일어날 정도였다.

 코로나는 상황이 점차 나아졌고, 거리두기는 해제되었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고 카페와 식당에도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페스티벌도 다시 열렸다. 3년 만에 간 페스티벌은 변함없이 재미있었고 생생한 드럼과 기타 소리를 들으면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람들과 다 같이 소리 지르고 뛰는 것도 머릿속이 까매질 정도로 신이 났다. 인생의 활력소는 분명히 이런 커다란 이벤트가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한 일만이 활력소가 될 수 있는 걸까? 나는 여전히 주말에 느지막이 내려 마시는 커피를 사랑한다. 새로운 원두를 구매하고 처음 내리는 순간이 늘 설렌다.

 인스턴트 커피 대신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는 행위는 일상의 한 부분에 조금 더 정성을 더하는 것이다. 일상에 섬세함을 더하는 그 약간의 변화. 이런 변화 역시 충분히 삶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준다는 걸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깨달았다.

 예전에 읽었던 한 책에서는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야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삶의 활력소라고 다를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을 꼿꼿하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1년에 간혹 가는 페스티벌이 주는 힘, 매일 곁에 있는 커피가 주는 힘, 모두 삶을 더 생기있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도 여러 가지 것들에 관심을 가지며 뿌리를 다양한 방향으로 내려보려고 한다. 새로운 땅을 탐색하며 얻게 되는 양분은 또 다른 활력소가 될 것이기에.

 학원을 그만두고서는 연습 악기를 구할 수 없어, 나는 오래 염원했던 개인 악기를 구입했다. 악기사에서 따끈한 그 녀석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집에서 혼자 연습하는 것은 외로웠고 그래서 괴로웠다.

 또 개인 레슨도 마찬가지. 말수가 별로 없는 선생님과의 레슨은 그리 즐겁지도 않고, 선생님의 연습실엔 온기가 없다. 그 학원의, 거실 같은 공용 공간에서 아쟁반과 다른 악기생들과 함께 수다를 떨던 순간들에 비하면 싸늘하기까지 하다.

 나는 여전히 아쟁을 사랑한다. 다만 활력을 잃었을 뿐이다. 활력소가 무엇인지 알았으니, 며칠 간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함께할 방도를 모색했다.

 그렇게 몇 주 전, 운 좋게도 어머니의 지인의 지인이 서울 서쪽의 한 국악 동호회를 소개해주셨다. 거기에는 작지마는 아쟁 소모임이 있다. 다들 학원과 다를 바 없이 중년, 노년의 사람들이지만, 몇 주 만나보니 다들 친절하고 좋다. 무엇보다 한 공간에 모여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 아쟁 연주가 훨씬 활기차졌다.

 지금은 개인 레슨과 소모임을 병행하고 있다. 혼자 연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외로움은 필연 어둠을 불러온다. 그 세계는 납작하고 깜깜하다.

 그럴 때 나의 세계에 별이 되어준 건 사람들과의 기억들. 학원의 아쟁반 사람들은 근사하고 거대한 은하를 만들어주었다. 이제는 새 모임으로 그 너머에 새로운 은하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부디 아쟁이라는 나의 소중한 우주가 더욱 활기차고 다채로워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