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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내게 중요하다. 징크스처럼, 허투루 대할 수 없다. 첫 소모임 활동, 첫 글을 쓰기 위해 자판에 손을 올려놓았다. 알바하는 도중 손님이 없어 조용한 잠깐의 시간에, 나는 작은 의자에 앉아있다. 글의 시작은 이렇다. ‘시작은 내게 중요하다•••.’

 휴대폰의 자판을 쓰자니 쓰는 맛이 없다. 집에 돌아가면 늦은 시간일 테고, 내일 수업이 있을 걸 알면서도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집에 가서 컴퓨터를 켠다. 타다닥 울리는 타자기의 감칠맛. 드디어 쓰는 맛이 난다. 이것 보라, 써놓은 첫 문장 그대로다. 시작을 허투루 대할 수 없다. 상황과 장소를 따져야 하고, 조금의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이든 시작이 어렵다는 말이 있다. 올해 나의 삶은 딱 이 ‘말’로 정리된다. 시작이 너무나 어려웠다. 여태껏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라 했으면서, 갑자기 나를 들판에 풀어놓는다. 예? 이제 뭘 하면 되죠? 뭘 하고 뭘 먹고 뭘 위해 살면 되는 거냐고요.

 졸지에 트랙 밖의 경주마가 되어버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어떤 말은 운동을 열심히 한다. 어떤 말은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다못해 경주마 관리 센터까지 다닌다! 또 다른 말을 찾아 연애하거나, 여러 친구 말들에 둘러싸인 인기쟁이 말도 있다. 덕분에 뭐라도 일어나 해야 할 것만 같이 초조해지고 조바심이 난다.

 뒤처진다. 정확히는 뒤처진다고 느낀다. 달리기만 하면 되었을 때는 고민 없이 직진만 했는데 무한한 선택지가 눈앞에 떨어지자 아예 숨고 싶어졌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무섭다. 실패가 두렵다. 무조건 지름길을 찾아 최고의 상황만 맞이하고 싶다는 욕심이, 나를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인지 나는 의존성이 강하다. 혼자선 시작을 못 한다. 무조건 그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을 따라다녀야 한다. 내 친구가 편의점 알바를 하길래 나도 지원했다. 이제 올리브영 알바를 하길래, 그리고 엄청 괜찮다고 하길래 나도 바꿔볼까 간 보는 중이다. 친구가 좋다길래 물건을 샀다. 친구가 간다길래 따라 동아리에 들었다. 친구가 책을 열심히 읽길래 같이 읽어보았고, 친구가 글을 잘 써서 재밌길래 나도 한 번 써본다. 친구들 뒤만 졸졸 따라가다 가끔 뒤를 돌아 묻는다. 이거 맞아요?

 번외로, 처음 가는 곳은 웬만하면 친구 추천을 받는 습관이 있다. 미용실 추천해줘. 거기 피부과 효과 있어? 이 집 메뉴 뭐가 맛있었어? 네가 먹어봤던 식당으로 가자. 그때 갔던 호텔 좋아? 추천할만해? 그 드라마 재밌다고? 이 영화가 그렇게 재밌다고? 이런 나의 모습이 마냥 싫은 것은 아니다. 타인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습관이 생긴 이유이다. 내가 이렇게 지름길이자 꿀팁들만 쏙쏙 뽑아가려고 하는 이유는 실패하기가 죽기보다 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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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난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당차고 남달랐다고 한다. 조그만 게 방방에서 뛰고 있는 3살 많은 오빠를 밀쳐내고 혼자 독차지해서는 거기서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 유치원에 갈 때는 엄마보고 안 따라와도 된다고 하고 혼자 버스를 타러 갔다. 다른 부모님들이 모두 아이와 손잡고 버스를 기다리다 혼자 서있는 나를 보곤 대견해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예쁘게 치마와 구두를 입혀줬더니 운동장에서 구두 신고 뛰어다니며 축구를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충격을 받으셨다고 한다. 많은 친구들 앞에서도 부끄러움 없이 춤추고 노래를 부르며 학급 장기자랑을 했고, 심지어 마술쇼도 했더라. 마술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내가 어떻게 한 건지 반응도 최고였다. 부모님과 함께해야 하는 숙제를 알아서 해결해서 엄마는 뒤늦게 담임 선생님을 통해 그 사실을 듣곤 난감해했다. 오빠 친구들과 친구먹고, 오빠 친구의 동생들과 친구먹고, 찜질방에서 처음 만난 애와도 오랜 친구인 것처럼 뛰어다니며 놀았다.

 어렸던 난 이렇게 좌충우돌 우당탕탕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겁 없이 온 곳을 누비고 다녔고 누구든지 만나면 스스럼없이 직진했기에 결국 친구가 되었다. 꽤 독립적이었고 대단한 용기와 배짱을 가졌다.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무슨 사회의 풍파를 겪었기에 어렸을 적의 나보다 더 작아진 걸까?

 상당히 의존적으로 변했다. 의존성이 강한 건지 외로움인지 모르겠다. 혼자서 하는 것보단 같이하면 재밌고 포기할 확률도 낮으니 남을 찾는 것 같기도 하다. 혼자 하는 것은 내게 마치 어두운 터널에 떨어져, 언제 도착할지 모른 채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과 같다. 재밌고 즐거운 놀이가 아니라 헤쳐 나가야 하는 업무가 된다. 같이 하면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처럼 의욕이 생기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하면 그 자체로 재밌고 그 분야에 전문성 있는 친구이면 덕분에 지름길로 가는 느낌이 든다.

 내 시작은 외로움이 강하다. 그래서 어렵다. 이 세상은 결국 혼자가 모여 모두가 되는 건데, 난 자꾸만 ‘혼자’를 외면하고 ‘모두’만 찾는다. 아마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아니었다면, 삶이 오로지 개인플레이에 경쟁뿐이었다면, 나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언제쯤 어른이 될래? 내가 상상하는 어른은 외로운 시작을 이겨내는 것이고, 난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가끔은 상상한다. 주체적으로 취미 생활을 찾아 몰입하는 나를 보여줄 날을. ‘외로운 시작’을 이겨내고 자신감 있게 직진하는 날이 언젠가 올 거라 믿는다. 그전까진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나아가보자.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름길만 찾지 말고, 여기저기 부딪혀보면서 ‘느린 성장’의 매력을 느껴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