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세상 멸망시키기

 내게 소행성이 충돌하는 것만큼 낯선 일은, 남들 앞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우는 것이다. 의외로 어릴 때는 동네 제일가는 울보였다. 아파트 주민들은 내 울음소리를 듣고 아침인 걸 알았다고 한다. 용띠보다는 닭띠가 적성에 맞았다. 또 다섯 살 즈음엔 오빠만 유치원에 가는 게 질투가 나서, 유치원 버스가 못 가도록 도로에 드러누워 울었단다. 엄마는 딸내미가 뉴스 1면에 나오는 사회운동가가 될 것이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울보로서의 압도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가 희미해져간다.

 요즘은 슬플만한 일이 있어도 남 앞에서는 좀처럼 눈물이 안 난다. 가끔 터질 것 같은 날에도 집에 아무도 없을 때에만, 그것도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며 눈물을 흘려보냈다. 혹여 눈이 부은 게 티 날까봐 눈두덩에 찬물을 바르며 나왔다. 그러고는 다시 할 일을 시작했다. 마치 내겐 슬픔이라는 감정이 없는 것처럼 무던하다. 그래서 이번 글 주제를 들었을 때도, 드디어 지겨운 일상들이 끝나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최후의 일주일 동안 태연하게 평소처럼 지내겠거니 싶었다.

 무슨 일이든 별로 슬프지가 않아요. 상담선생님이 매주 하는 질문 -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요? - 에 대한 이 주의 답이었다. 선생님은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말 그대로 슬픔도, 눈물도 없어진 것 같아요. 지구 멸망 전 최후의 일주일에 뭘 할지에 대해 써야 하는데, 막연히 좋겠다는 생각만 들어요. 나이를 먹으면 원래 이런 건가요…. 그런데 선생님의 답은 뜻밖이었다. 제가 볼 때 안수 학생은, 일부러 슬픔의 감정을 회피하는 것 같아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끼셨냐고 물으니, 선생님은 담담하게 말했다. 안수 학생은 때때로 상처받았던 일들을 얘기하는데, 모두 이상할 정도로 가볍고 유쾌하게 얘기하더라고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듣는 저까지도 마음 아파지는 이야기인데도 말이에요. 나는 허를 찔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슴 한 구석이 이지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이 물었다. 무엇이 안수 학생을 그렇게 만드나요? 무얼 피하고 싶은 건가요?

 생각이 파도처럼 쏟아져왔다. 정제되지 못한 말을 쏟아냈다. 돌이켜보면 소리 내어 울고 싶을 만큼 슬픈 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상처받았을 때 제때 사과를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어요. 그 일들 때문에 위로받고 싶을 때에는, 이상하게 내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었어요. 선생님이 물었다. 왜 힘들었을까요? 신기하게도 답이 바로 나왔다. 기대했다가 실망했을 때의 아픔이 더 무서웠으니까요. 그래서 애초에 슬픔을 느끼지 않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세뇌한 것 같아요. 그리 슬플 일이 아니었다고 괜찮은 척하면서….

 말하는 중에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왔다. 두 달간의 상담 중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소리 내어 울지는 못했다. 마이크로 코 먹는 소리가 들릴까봐 재빨리 음소거를 누르던 그 순간, 내가 정말 최후에나 할 법한 일탈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도 아니고 위험한 섹스도 문화재 방화도 아니고… 그저 ‘남들 앞에서 큰 소리로 우는 것’임을 깨달았다. 생의 마지막이라면, 화장실 거울만 알고 있는 나의 우는 얼굴을 보여도 되지 않을까?　울음의 호흡에 거칠어지고 잔뜩 갈라진 목소리를 들려줘도 되지 않을까? 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최후의 일주일 간 뭘 할지 좋은 생각이 났어요, 쌤.

 그렇게 결정했다. 지구 멸망 전 7일 동안, 나는 펑펑 울 계획이다. 울음의 이유는 많다. 멸망과 상실의 슬픔, 외로움, 죽음의 두려움, 게워내지 못한 억울함 같은 것들. 평소처럼 살되, 순간마다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울 것이다. 월요일의 희곡 읽기 모임에서, 화요일의 국악 동호회에서, 수요일의 친구와의 약속에서, 목요일의 글쓰기 모임에서, 금요일에는 알바를 끝내고 동료들 앞에서, 토요일엔 붐비는 거리에서, 일요일 밤엔 부모님의 침대에 누워서…. 얼굴의 모든 구멍을 확장하고 잔뜩 부은 못생긴 얼굴을 내보이며 엉엉 울 것이다.

 그들이 나를 위로해주지 않을 걱정은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일주일이면 더 안 볼 얼굴들이다. 온갖 설움은 다 이곳에 풀어놓고 갈 작정이다. 지금까지의 내 메마른 세상을 산산히 멸망시키는 7일이 될 것이다. 나는 요란하게 울고불고 하겠다. 몸의 모든 물기를 눈물과 콧물로 나오게 하리라. 10년을 알고 지내면서도 우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는 친구의 입이 떡 벌어지도록 구슬피 울 것이다.

 마지막 밤, 엄마가 도대체 일주일 동안 왜 이러냐고 물으면 더 우렁차질 것이다. 이제 엄마를 못 본다니, 지금까지 전하지 못한 사랑만큼 엉엉 울 테다. 엄마의 진저리에 결국은 울음을 그치기는 하겠지. 그때는 입가에 흥건한 침을 닦고, 내게 세상을 선물해준 여자의 뺨에 마지막 뽀뽀를 하고선 창문 쪽으로 돌아눕는다. 다행히 창밖으로 세상이 멸망하는 풍경은 잘 보이지 않을 거다. 아마 눈이 퉁퉁 부어있을 테니까.

 나는 기도한다. 세상아, 나 너무 쪽팔리니까 제발 멸망해줘야 한다. 다음 주가 온다면 모두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이토록 추한 꼴을 다 보이고 어떻게 다시 본단 말인가! 그렇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개운하긴 하다. 건조했던 나의 세상을 완전히 멸망시켰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떤 결과가 오든 마음은 퍽 가뿐하다. 다만 조금 궁금하긴 하다. 이대로 다음 주가 오면 어떨까? 7일간의 눈물에, 내 세상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겠지. 그래도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폐허이려나. 조금 생각하다가 눈을 슬며시 감는다. 나는 어쩌면, 세상이 멸망하지 않기를, 더, 바라는 것 같기도….

📞💬

 일주일 후 지구멸망, 아마도 가족들과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삶을 돌아보고, 못해본 것을 도전해보고, 후회하고 아쉬워하고 만족하고 그러지 않을까.... 뭔가 독특하고 재미있는 대답을 내놓고 싶었는데 쉽지 않다. 내 삶이 뻔하기 때문일까. 그저 보통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같은 답을 내놓고 비슷한 결론을 내놓는다. 특별하지 못한 삶의 마무리는 역시 특별하지 못하다.

 나는 항상 특별하고픈, 남들과는 다른 개성을 가지고 그것을 모두가 알아봐 주기를 원하는 그런 욕망을 가지고 살아왔다. 어느 정도였냐면 어느 날은 가만히 있다가 나의 몰개성과 뛰어나지 못함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에 압도되어 한여름이던 때 저녁 7시, 가족들은 거실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그 뜬금없는 시간에 혼자 감정이 북받쳐 올라 방에서 오열을 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채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뜬금없이 울면서 자신의 특별하지 못함과 그로부터의 괴로움이라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늘어놓는 나의 예의 없는 전화를 묵묵히 들어주며 특별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으로 괴로워한다며 나의 유치한 하소연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친구에게 그럼 너도 그렇냐는 질문을 했다. 잠시 고민하던 친구는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항상 평온하고 만족할 줄 아는 그 친구 성격다운 답이었다. 특별함을 갈구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특별해 보였다.

 또 뻔한 이야기로 인생을 살면서 다른 수 많은 특별함을 가진들 사람들 속에서 특출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좌절되기 너무도 쉬웠다. 그래서 세상과 타협을 봤다. 특별하지 못함에 대한 비참함을 감추기 위해, 나만의 고유 가치를 알아봐 주는 한 명만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에게' 그리고 '내가' 특별한, 특별할 사람을 찾기로 했다. 세상이라는 범위에서 절대적인 특별함의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그런 욕망의 좌절을 경험한 후로 타협한 가치관이기에 특별한 사람과 특별한 관계에 대한 열망은 너무나도 커져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도 쉽게 특별한 사람의 지위를 부여했다. 조금만 취향이 겹쳐도, 혹은 공감대가 비슷하기라도 하면 마치 운명을 찾은 듯이 기대하고 그 사람의 가치를 부풀리고 후에는 특별한 관계라고 명명했다. 그 모든 관계들은 잘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찾은 나의 특별한 사람은, 그리고 나를 특별히 여겨주어야 하는 사람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보기엔 너나 나나 특별하지 않아."

 원망과 실망과 상처가 컸다. 지금 돌아보면 일방적인 나의 이상에 대한 강요였고, 미숙한 감정과 함께한 치기였다. 그들이 나의 본질과 나만의 가치를 알아보고 사랑해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특별함의 정의를 그들에게 갖다 붙이고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들을 했다. 내가 참을 수 없이 괴로운 것은 내가 행한 그러한 것들이 모두 나를 진심으로 대해준, 나에게 진솔한 감정과 사랑을 준 사람들에게 향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나는 강렬히 원하는 것들을 포기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구가 멸망하여 생이 끝나는 마지막이 오면, 그러한 상황이 전제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해소하기 쉽지 않을 나의 이러한 이뤄질 수 없는 욕망과 그로부터 오는 괴로움과 슬픔이 모두 의미 없는 상념이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런 때가 온다면 나는 그들 한 명씩을 찾아가 내가 강요하고 부여했던 그들의 특별함이 아닌 그들이 나에게 해준 것처럼, 진실된 마음과 애정을 담아 그들이 정말 가지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고 얘기해주고 싶다. 나의 미숙함과 그것으로 인해 준 상처들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 지금 돌이켜보면 한여름 저녁 7시에 나의 전화를 받아 준 그 친구가 그렇게 특별함을 갈구하지 않는 사람일 수 있었던 이유는 진솔함과 순수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친구 같은 사람이 되지 못하는 나의 추측이기에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생각과 추측이 옳던 그르던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특별함을 너무나도 갈구하며 덮어씌운 거짓말들과 진실에 대한 외면과 회피로 인해 잃어버렸던 순수성을 회복하고 특별하지 못했던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