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가 힘든 사람들~ 당장 컴온🙌
열한 번째 이야기가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착한여성들입니다.
이번에 들려드릴 이야기의 주제는 🚪정리🔎입니다.
ㅂ
살아가는 동안에는, 반드시 정리를 해야하는 순간이 옵니다.
-때로는 정해진 수순처럼, 혹은 섬광처럼 갑작스럽게요.
정ㄹ
일상에는 무언가를 정리하는 크고 작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단순한 물건부터 음식, 방구석의 잡동사니들 어쩌면 인간관계일 수도 있겠네요.
어쩌면
소통을 위해 생각과 말 그리고 글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언어보다도 추상적인, 어떤 마음을 정리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님은 지금 정리해야하는 게 있으신가요?
과연 정리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또 정리하지 않는 '방치'는 꼭 나쁘기만 한 걸까요?
이번 2주간, 정리에 대한 안착한여성들의 독특한 생각을 들어보면,
님의 '정리'에 대한 생각도 조금 '정리'가 되실 겁니다.
이번 주도, 아주 친한 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듯
부디 이 여자들의 깊은 속마음들에 풍덩 빠져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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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상황 전광판에 빨간 글씨로 깜박인다. ‘정체.’
도로로 꾸역꾸역 차들이 밀려들어온다. 백미러로 번호판을 살펴보니 죄다 오늘 날짜다. 차종도 다양하다. ‘친절의 기억’ 차, ‘눈웃음’ 차, ‘장난의 기억’ 차….
오늘도 나가기는 글렀군. 혀를 찼다. 정체가 있는 날은 일찌감치 나갈 생각은 포기하는 게 좋다. 어느새 하늘도 분홍빛이다. 마치 이 도로 위에서의 첫날처럼 말이다.
반 년째 이 도로 위에 있다. 여기는 당최 교통정리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난데없이 정체가 생겨서 며칠을 한 자리에 머물기도 한다. 가끔 나타나는 나들목으로 나가려고 속도를 낼 때면, 옆 차가 엄청난 속도로 앞질러 길을 막아선다. 날씨도 심하게 오락가락해서 비가 내리거나 안개가 끼면 차들이 이리저리 얽혀버린다.
이곳의 이름은 짝사랑. 교통 상황은 항상 ‘혼잡’이다.
*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대략 반 년 전.
어느 모임에 나가 그 사람을 봤다. 그의 손짓의 궤적을 따라가다 몇 번 눈이 마주쳤다. 작은 웃음. 다소곳 접히는 눈매가 귀하다고, 잠시 생각했다. 작별할 길의 두 뺨이, 복숭아 빛 파편이 하루의 말미까지 아른거렸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웠다. 평소보다 이불이 보스락거렸고, 가슴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랑 없는 도로를 달린 지 꽤 오래였다. 그날 새벽, 분홍빛 자동차 한 대가 내 차 옆으로 슥 다가왔다. 번호판에는 그날의 날짜와, 작별할 시간대가 적혀있었다. 왠지 따라오라고 신호를 주는 것 같았고 반은 홀린 듯, 반은 자진해서 따라갔다. 그 차는 새로운 도로로 나를 이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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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는 분홍빛 안개에 잠겨있었다. 따라간 차의 색깔과 같은 것이었다. 흐릿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낯설었지만 몹시 황홀한 풍경이었다.
잠깐은 여기서 달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벼운 드라이브정도는 나쁘지 않으니까. 하늘은 아련히 포근하고 바람은 기분 좋게 감겨왔다. 간만에 세상이 달콤하다고 느꼈다. 조금만 있다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
그를 사랑하고부터는 일주일, 혹은 이주에 한 번 모임에 나가는 게 부쩍 즐거워졌다. 이전에도 좋아하긴 했지만 무언가 결이 달랐다. 말을 하거나 잠깐 시선을 돌릴 때에도 신경이 모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시선으로 머리칼의 색을 훔치고, 부러 그의 옆을 지나치며 코끝으로 향을 훔쳤다. 쓸데없는 질문을 던져 기어코 그날의 목소리를 담아갔다. 그는 내게 아주 친절하고 다정했다. 이런 점들은 더 강렬하게 기억되었다.
그 기억들이 하나씩, 이 도로 위의 차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설레는 기억일수록 나의 가장 가까이에서 달렸다. 일상생활의 의식이 그에게서 멀어지면, 주변 차들은 느려졌다. 현실에 집중하다보니 기억이 흐릿해진 것이다. 그렇게 달리다가 갑자기 그의 어떤 순간이 불현 듯 떠오를 때면, 그 기억의 차가 내 차 앞으로 불쑥 끼어들었다. 심장이 쿵 떨어졌다. 야!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그때부터는 운전에, 생활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멍하니 앞 차만 바라보는 시간이 잦았다. 이런 시간이 계속 반복되고 늘어났다. 이제는 가벼운 드라이브가 아니었다. 불쑥불쑥 나타나려는 차들이 주위에 가득했다. 가벼운 드라이브라기엔, 도로가 너무 혼란해졌다.
나는 그와 사귈 마음이 없다. 오롯이 짝사랑이기에 열렬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너무 길어졌다. 두려움과 외로움을 인식한 때부터, 기상 상황이 오락가락해지기 시작했다. 설레는 기억들이 마구 몰려올 때는 마냥 예쁘게 물들던 하늘이, 하염없이 시간 보내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순간 어둑어둑해졌다. 우울이 넘실대면 비와 기억이 섞여 심각하게 혼잡해졌다.
아주 오래간 나를 다독여야만 했다. 심장에게 이렇게 속삭이기까지는.
“이젠 정리하자, 이 사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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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을 정리한다는 것은 곧 짝사랑을 끝낸다는 것이다. 이 혼란한 교통 상황을 정리하고 무사히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에 계속 시도해보았던 것은, 기억의 차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무작정 엑셀을 밟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 망각했다는 듯 열심히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온갖 일들을 벌였다. 공부를 하고 예전에 못다한 일을 꺼내오고, 배우지 않아도 될 것을 배웠으며 친구들을 아주 많이 만났다. 새벽이 다 된 밤 시간은, 기억의 끼어들기가 가장 잘 일어나기 때문에, 자정만 되어도 곯아떨어질 만큼 빡세게 하루를 보냈다. 마치 그 전의 복작복작한 도로는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엑셀을 언제까지나 밟을 수는 없었다. 반드시 느슨해지는 시점이 존재했다. 빠른 속도로 달리려면 에너지를 온통 쏟아내야 한다. 계기판을 보니 하루의 연료가 금방 소진되고 있었다. 삼일에 걸쳐 쓸 에너지를 하루하루 쏟아 붓고 있으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점점 진이 빠지고, 벌려놓은 일들을 해결하지 못하니 상념이 짙어졌다. 주행이 점점 느려지는 동시에, 다시 스멀스멀 뒤의 차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정체와 혼란의 교통 상황이 반복된다. 온갖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이 순간에 참 좋았잖아! 어떤 차는 내 차 앞을 가로막는다. 이 날은 기억나?! 간만에 겪는 혼란함의 충격은 컸다. 나가겠다던 의지가 희미해질 정도로. 이런 상황에서 모임에 나가 그를 만나면, 새 차들이 물밀 듯 도로로 유입되어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아, 이런 방식으로는 영원히 혼잡한 도로를 달려야한다.
진정 정리를 하고 싶다면, 사실 방법은 명확하게 있다. 순서대로 해야 한다. 일단 멈추어야 한다. 무엇을?
“저, 사정이 생겨서 한동안 모임 못 나갈 것 같아요.”
-새 차들이 들어오는 것을. 바로, 그를 만나는 것을.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이 도로의 하늘은 곧바로 침울함 일색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진정한 혼란의 시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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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뎌야 해….’
남아있는 모든 차들이 다닥다닥 붙어 움직이지를 않는다. 나는 운전대를 놓아버린다. 한 군데에 멈춰 서서, 이 마음에 온전히 침잠한다. 브레이크를 밟다 못해 기어를 걸어 차를 완전히 멈춘다. 차들은 멈춰있는 나만큼이나 느릿하다. 머릿속에 끈덕지게 붙어있다. 아주 느리게, 느리게 하나하나 모든 기억을 곱씹는다. 아주, 아주 오래 걸린다.
섣불리 잊으려고 엑셀을 밟은 것과는 완전히 반대의 방식이다. 기억들이 나를 지나가도록 기다린다. 모든 기억들의 색감, 향, 소리, 맛과 촉감 그리고 감정들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진다. 이만큼 그 기억들을 되새길 수 없을 정도로 공을 들여 기억들을, 사실은 그 기억 속의 나를 천천히 보듬어준다. 혼란함에 몹시 애탔던 울망한 나의 얼굴들에게 말해준다. 그래, 충분히 사랑할 만한 사람이었고, 충분히 사랑했어. 후회 마. 공들여 보내줄게.
오랜 시간이 지나 이윽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차들의 행렬이 나를 앞서간다. 그래도 몇몇 기억들, 아주 커다랗고 마음에 드는 색감의 차들은 여전히 내 곁에 남는다. 이 녀석들과는 앞으로의 주행에서도 함께하기로 한다. 그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도 인생에 몇 없을 소중하고 좋은 기억들이다. 다시 주행을 시작한다. 이 차들은 나를 기다렸다가, 내 뒤로 천천히 따라온다.
하늘은 새벽빛, 옅고 푸르다. 새 길로 가기에 좋은 타이밍이다. 깔끔히 개어진 도로, 곧 나들목이 나타난다. 잊지 못할 다채로운 시절. 이 시절의 증명들과 함께, 천천히 이 도로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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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리되면, 참 좋겠지?
방금도 엑셀을 밟아 탈출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수많은 과제들과 시험 준비, 모임들과 약속들로도 그를 망각하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무작정 달아나기만 했다. 기실 무섭다. 브레이크를 걸고, 이 도로를 달려온 시간만큼 제대로 정리할 시간을 가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
모임엔 ‘덜’ 나가기 시작했지만, 한 번 나갈 때마다 교통 혼잡은 그 전보다 심해졌다. 이젠 그를 만나기만 해도 비가 주룩주룩 쏟아져서, 나는 갈수록 추해진다. 하지만 이번에도 혼잡함을 정리하기보다는, 혼잡한 도로에 남아있기를 선택한다. 조금만 더 이 도로에 있고 싶다.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한심하게도. 고개를 들어 위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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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상황 전광판에는 글씨가 빨갛게 반짝이고 있다. ‘정체’ 그리고 ‘혼잡’이라고. 사랑인지 혈흔인지 모를 색깔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도로로 시선을 내린다. 곧 밤이다. 또 저쪽에서 무더기로 차들이 몰려온다. 빨갛게 눈을 켜고 내 의식에 나타나려는 기억들. 아마 정체를 감당치 못하고 가만히, 오래간 축축하게 비로 젖을 것이다. 아침의 도로는 질척여서 운전이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속 운전한다.
수많은 길 중 하나를, 좀 오래 달리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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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 🛸
'정리'에 대한 모리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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