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가 힘든 사람들~ 당장 컴온🙌
열한 번째 이야기가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착한여성들입니다.
이번에 들려드릴 이야기의 주제는 🚪정리🔎입니다.
ㅂ
살아가는 동안에는, 반드시 정리를 해야하는 순간이 옵니다.
-때로는 정해진 수순처럼, 혹은 섬광처럼 갑작스럽게요.
정ㄹ
일상에는 무언가를 정리하는 크고 작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단순한 물건부터 음식, 방구석의 잡동사니들 어쩌면 인간관계일 수도 있겠네요.
어쩌면
소통을 위해 생각과 말 그리고 글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언어보다도 추상적인, 어떤 마음을 정리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님은 지금 정리해야하는 게 있으신가요?
과연 정리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또 정리하지 않는 '방치'는 꼭 나쁘기만 한 걸까요?
이번 2주간, 정리에 대한 안착한여성들의 독특한 생각을 들어보면,
님의 '정리'에 대한 생각도 조금 '정리'가 되실 겁니다.
이번 주도, 아주 친한 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듯
부디 이 여자들의 깊은 속마음들에 풍덩 빠져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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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너는 왜 내 말을 그렇게 받아들여?”
머릿속 생각을 언어로 정리해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자주 오해가 생긴다.
“아,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지.”
때론 무언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경우도 발생한다. 언어엔 한계가 있다고 자주 절감한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해 전달한다면 좋을 텐데. 아무리 최선을 다해 단어를 골라도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정리해 타인에게 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부유하는 마음을 단어로 잡으려고 해보았자 쉽게 실패하곤 한다.
나의 모국어는 한국어. 나이가 들며 많은 한국어 단어를 습득했지만, 이처럼 많은 단어를 가지고도 때론 뭐라고 말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말을 하다 말고 ‘그런 게 있어.’라고 일축하거나 ‘보면 알아.’라며 다른 감각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모국어인 한국어도 이 수준인데 외국어라면 어떨까?
“Umm…”
나는 핸드폰을 붙잡고 눈을 굴리곤 했다.
“Umm…”
전화기 너머의 전화 영어 선생님은 내가 문장을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긴 침묵 후 내가 자주 했던 말은 I don’t know how to say it in Engli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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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m,.. Umm... Hmm...
처음 전화 영어를 시작할 때보다 영어 실력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영어로 말하다 보면 자주 머릿속이 꼬인다. 영어는 평생을 써오며 연마한 언어인 한국어와 그 구사 수준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났다. 말할 때 문법 실수는 기본이었고 시제도 자주 혼동했다. 기본적인 문장조차 구성하기 힘들어 단어만 툭툭 던질 때도 있었고, 도저히 뭐라고 말할지 모를 때는 파파고에 접속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영어 화자 앞에서 소통 불능의 순간도 종종 찾아왔다. 외국인 친구와 이야기할 때, 깨진 언어로 이것저것 내 생각을 허겁지겁 말하다 보면 친구는 가끔 뭔 소리를 하는 거냐며 차분히 말해보라고 웃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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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종종 찾아오는 버퍼링의 순간을 빼면, 의사 표현과 간단한 일상 대화는 무리 없이 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런데 이 지점에 오고 나자 또 다른 벽이 앞에 나타났다. 영어를 쓸 때면 나의 감정과 의견이 무척이나 단순하고 투박하게 정리된다는 것이다. 영어를 말할 때면 두꺼운 장갑을 낀 채 아주 정교한 물건을 만지는 느낌이 든다. 한국어에 비해 한정적인 단어와 표현으로 다양한 감정들을 자꾸만 압축한다.
예를 들어 코를 파고드는 안 좋은 냄새를 맡으면 ‘냄새가 정말 고약하다’, ‘썩은 냄새가 나네’, ‘숨을 쉴 수가 없어’, ‘코를 틀어막고 싶다’ 등등 한국어론 여러 가지 표현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영어로는 ‘냄새가 최악이다’ 정도의 문장으로 겨우 생각을 정리해내거나 ‘너 방귀 뀌었니?’라는 간단한 농담으로 냄새가 고약하다는 것을 표현하곤 한다. 한국어로 생각하는 것처럼 영어로 말하려고 하면, 말이 자주 꼬이기에 말하다 말고 얼렁뚱땅 간단하게 정리한 뒤 넘어가는 경우도 잦다.
대화 주제 자체가 어려워질 때도 내 영어는 다시 꼬이기 시작한다. 맛있는 음식이나 여행, 혹은 좋아하는 가수 정도의 주제로 이야기할 때면 얼추 생각하는 걸 영어로 정리해 잘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 이야기를 한다면 ‘대통령이 어떻다.’ 정도로 무척 단순히 압축한다. 조금 더 자세한 근거를 덧붙이고, 의견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하려면 문장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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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주제가 된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정리가 안 된 말만 내뱉기 일쑤다. 문학도 비슷하다. 나는 원서로 책을 종종 읽곤 하지만, 아직까지는 청소년용 소설처럼 문장이 크게 복잡하지 않은 것이나, 내용이 무겁지 않은 로맨스 소설 수준까지만 소화 가능하다. 최근에는 젠더와 이민을 소재로 다룬 소설책, 그리고 인종에 대한 논픽션을 다소 강제적으로 읽어야만 했다. 읽으면서도 머릿속에서 단어들이 둥둥 떠다녀 천천히 문장을 재조립하듯 읽어갔다. 어떻게 겨우 이해는 할지라도, 책에 관해 내 의견을 말로 내뱉는 건 또 다른 일로 너무나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나는 또 간단한 문장 구조로 정리해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한국어론 충분히 가능한데 영어로는 정리 불가능한 문장을 마주할 때면, 퇴화한 듯한 나의 언어 실력을 느낄 때면, 서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멋지게 내 주장을 전개하거나 외국인 친구가 힘들 때 근사한 위로의 말을 건네 주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에는 걱정이 많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이 말을 영어로 옮기다가 실패하고, 그냥 돈 워리 해버렸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간단하게 줄여버릴 때면,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내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를 보고 있으면 때론 그거면 되었다 싶기도 하다.
둔탁하게 언어를 사용하지만, 오히려 영어를 쓸 때면 자유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언어의 한계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많은 단어들과 표현을 가지고 이리저리 바꾸며 섬세하게 표현하는 게 불가능하기에,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하려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최대한 오해 없이 전달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단순하게라도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해 말하다 보면, 살아가며 많은 단어가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게 역설적으로 자유로움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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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어떤 것은 언어로 정리하려고 시도할 때 어쩔 수 없이 납작해지곤 한다. 구병모의 장편 소설 『한 스푼의 시간』엔 로봇인 주인공이 나온다. 인간의 언어를 학습한 그는 주요 인물인 명령에게 이렇게 묻는다. “무너진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소설 속에서 은결은 ‘무너진다’는 단어에 대한 언어적 정의를 찾는 대신, 스스로 그 단어를 경험한다. 애초에 그와 같은 단어는, 단어에 대한 설명을 읽는 것보단 겪는 편이 이해에 더 가까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적확하게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때론 그런 말을 통해 위안을 받거나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모든 것을 말로 정리할 수는 없다. 말론 표현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그 한계를 메울 수 있을까. 아마도 말을 할 때 찌푸려지는 미간, 일그러지는 입술, 올라가는 입꼬리, 확대되는 눈, 으쓱하는 어깨와 어깨 위로 내려앉는 손, 커지는 목소리와 입술 사이를 비집고 터지는 웃음 같은 것들이 언어로 온전히 표현 불가능한 것들을 보충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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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어가 아직까지는 좋다. 한국어처럼 영어를 잘 구사하기 위해 앞으로 더 노력할 것이지만,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기에 역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 좋다. 한계를 완화하고자 커다란 웃음 같은 비언어적 요소와 함께 영어를 말할 때면, 스스로가 좀 더 쾌활해지는 점도 바보 같아 보이지만 마음에 든다.
최근엔 프랑스어를 배우며 더욱 더 극도로 단순하게 정리되는 생각을 감각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자유로움이란 언어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에서 오기도 하지만, 생각이 단순하게 정리되는 것에서 오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한 세계에 살며 아주 단순한 생각 전달에 집중해 언어를 공부하다보면, 꼭 명상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를테면 어제 피자 먹방을 보고 잤고, 오늘은 하루종일 피자 생각이 났다. 그래서 저녁으로 피자가 먹고 싶다. 이때 Umm… Je veux une pizza… Hmm… pour le dîner로 정리하면 끝이다. 머릿속이 단순해진다. Umm, Umm, Hmm, 반복하며 천천히 말하더라도 이 문장으로 정리해내면 필요한 건 다 말했으니 족한 게 아닐까. 그리고 저녁으로 피자를 먹으면 그날은 꽤 행복한 하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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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 🛸
'정리'에 대한 이하녕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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