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와 여행, 그리고 나의 친구
이번 2주 간은 자유주제, 자유형식으로
여섯 작가들의 제각각 개성을 담은 ⭐특별편⭐이 발송됩니다!
오늘의 특별편의 주인공은,
섬세한 감성의 필치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글로 피워내는 모리 작가입니다.
이번 특별편도 기대하고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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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제일 못하던 과목은 체육이었다. 그 후에도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던 내가 왜 요가를 배우기로 결심했는지는 선명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으로 요가원에 갔을 때, 처음으로 요가 매트 위에 앉을 때 그 어색함과 생소함은 여전히 생생하다. 나는 스트레칭도 안 하고 살았기에 온몸은 나무젓가락처럼 뻣뻣했고 근육은 조금이라도 늘리면 고통이 느껴졌다.
그날엔 온통 낯선 동작들을 쩔쩔매며 거의 따라가지 못했고, 땀은 예상보다 더 많이 흘렀으며, 허둥지둥하는 내 옆으로 요가 강사 한 분이 추가로 와서 도와주었다.
그러나 그때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요가 자세들보다도 더 생소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생소한 걸 넘어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때 요가를 배우지 않았다면 아마 아직도 못 해보았을지도 모른다.
바로 자신의 몸을 세세하게 인식해보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귀와 목과 어깨와 갈비뼈와 고관절과 발목과 발가락, 그리고 호흡에 대해 면밀하게 집중해본 적이 없었다.
수업의 마지막 순서엔 요가 매트에 등을 대고 눕곤 했다. 어두워진 조명 아래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정말로 잠에 빠져들 정도로 노곤하고 평온한 시간으로 간혹 코 고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땐 머릿속에 밀물처럼 들어차는 생각을 통제할 수 없었던 때였다. 그 꽉 들어찬 생각들이 빠져나가는 시간도 있어야 사람이 숨을 쉴 수 있겠는데, 머릿속은 늘 생각으로 넘칠 듯이 찰랑거렸다.
견디기 힘든 나머지 목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었다. 그런데도 수업의 마지막 순간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기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거센 바람이 잠시 멎은 밤, 악천후 속 잠깐 드는 햇빛과도 같은 시간. 다시 폭풍우가 휘몰아칠 것이라는 걸 알지만 잠깐이라도 그 잔잔함 속에 있고 싶어 꼬박꼬박 요가원에 가려고 노력했다.
비록 다른 사정이 생기며 반년을 못 채우고 그만두게 되었지만, 변화는 분명히 있었다. 여러 자세에 처음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수업을 따라가느라 급급한 대신 좀 더 내 몸에 집중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요가원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요가 영상을 보며 어느 정도 따라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눈에 띄는 엄청난 결과가 있던 건 아니었다. 발끝은 여전히 손으로 잡을 수 없었고, 어떤 자세에선 여전히 엉덩이가 땅에서 뜨곤 했다. 하지만 발끝이 안 되면 발목, 발목도 안 되면 종아리를 잡으면 되었다. 엉덩이가 땅에서 뜬다면 계속해서 조금씩 더 아래로 눌러주면 되었다. 어떤 자세가 영 되지 않으면 보조 도구를 활용하면 됐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대체할 수 있는 좀 더 쉬운 자세로 무리하지 않고 요가를 할 수도 있었다.
“무리하면 다치게 돼요.”
강사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각자 최선의 자세로 수업을 따라갔다. 강사는 덧붙였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라고. 그러려면 스스로에 대해 귀를 기울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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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에도 생각의 과부하는 나아지지 않아서 여전히 목을 자르는 상상을 자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충동적으로 항공권을 샀다.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 날이었다. 목적지는 삿포로. 출국일 2주 전에 충동적으로 결정한 여행이었다. 일본어를 하나도 하지 못하지만 혼자 가기로 결심했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통보했다.
출국 시간은 이른 오전이었다. 전날 서울에서 약속이 있었던 나는 약속이 끝나자마자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쪽잠을 청하며 인천공항에서 밤을 새우고 비행기에 타자마자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문득 뒷자리에 타 있던 사람의 말에 깼다.
“백설기다!”
백설기? 기내식으로 백설기라도 주는 걸까. 의아하게 눈을 떴다. 알고 보니 창문 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보고한 소리였다. 몽롱한 정신으로 비행기의 창문을 열어보자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왔고 잠이 확 깨는 기분이 들었다. 찡그린 눈 사이로 본 창문엔, 새하얀 설원이 가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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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치토세 공항에 내려 처음 밖에 나갔을 때, 뺨을 저미는 차가운 바람에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으며 내 키만큼 쌓인 눈을 바라봤을 때, 내리기 시작하는 눈을 손을 뻗어 잡아보았을 땐, 요가원에 가서 매트에 앉았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떠올랐다.
-해방감이었다. 무엇으로부터였을까?
삿포로에 머무는 3박 4일 동안 오로지 내 계획대로만 지냈다. 당연했다. 나는 혼자였고 이곳에서 나를 아는 사람도, 내가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굵직한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기분에 따라 내키는 대로 바꿨다. 찾아간 전망대의 야경이 생각보다 너무 좋아 오래도록 앉아있었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어 계획을 변경하고 온천 마을에 가기도 했다.
가고 싶던 카페를 찾아가서 라떼를 마셨고, 녹아내리는 수플레 팬케이크를 사 먹었다. 알맞게 구운 채소와 뽀드득한 커다란 소시지가 있는 수프 커리와, ‘노 라멘 노 라이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만드는 매콤한 라멘을 혼자서 잘도 먹었다.
쉬고 싶으면 무작정 앉아 쉬었고, 오타루의 오르골당 이곳저곳을 꼼꼼히 둘러보았고, 신고 있는 워커가 발을 너무 아프게 해 마침 세일하는 가게에 들어가 값싼 운동화를 사기도 했다. 바로 운동화로 갈아신고 지하도를 구경했다.
그동안 적지 않은 나라를 다녀왔다. 삿포로는 그중에서 내 마음속 순위의 거의 최상위권에 드는 여행지이다. 엄청난 절경과 랜드마크가 있던 것도, 잊지 못하는 맛집이 있던 것도, 두고두고 회자 될 만큼 특별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 해방감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무엇으로부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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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토세 공항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그 해방감에 대해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 해방감은 나에게 꼬리표처럼 달려 있던 모든 수식어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온 것 같다.
나이, 대학, 직업, 그 수식어들이 다 떨어지고 나니 여행지에서 남는 것은 온전한 나였다. 슬프면 울고 즐거우면 웃고, 오래 걸으면 피곤하고 따뜻한 커피에 몸이 풀어지는, 하고 싶은 것이 여전히 존재하는 20대 여자가 있었다.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아, 나는 아주 괜찮아.
그때 나는 늘 이렇게 되뇌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믿었다. 사실 진작에 지쳤는지도, 목놓아 울고 싶었는지도, 전부 그만두고 도망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참는 법을 택했다. 택한다기보단 선택지가 없었다. 존버는 승리한다지 않는가. 괜찮다고 끊임없이 속삭이지 않으면 꼭 무너질 것만 같았고 그럼 이 세상에서 혼자 뒤처질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그러니 무리하고 있다는 감각이 들어도 가뿐히 외면했다. 대신 스스로를 더 몰아세웠다.
세계는 자주 자신을 돌아보고 호흡할 시간을 주지 않은 채 그저 등을 떠밀곤 한다. 삿포로는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이었던 것이다. 어떤 틀 안에 나를 집어넣고 경쟁에서 도태된다고 겁을 주며 무작정 미는 세계의 시간으로부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라는 질문이 오래 괴롭혀왔다. 하지만 요가원과 삿포로에선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대신 나 자체와 나의 속도, 그 순간 현재 나의 감각을 인식하게 해주었다.
결국 나는 평생 나와 살아가야 한다. 나는 나의 적이 아니다. 냉혹하게 굴며 면박을 줄 대상이 아니라, 모두가 욕할 때도 감쌀 줄 아는 평생 함께 지낼 친구다.
그러니 여전히 불완전해도, 부족해도, 무리하지 않는 꾸준함으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나에게 다정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해야 다치지 않고 오래 걸어갈 수 있을 테니, 더 깊게 숨을 내쉬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삿포로에서 본 눈도 잊지 않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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