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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년의 한 여름날에 대해,
올해의 한 여름날에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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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사주를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여름이었던 것 같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무얼 해야하는지 모르겠던 여름날이었다. 놀고, 누군가를 만나고, 걸어다니고, 걷고, 취미생활을 영위하고… 평온하고 즐거운 인생 같았지만 기실 불행에 가까웠다. 아무 대책 없이 산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날은 그런 불안이 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산책을 하다가, 지도에서 '사주'를 검색하고, 평소의 산책길에서 한참 걷다보면 나오는 곳에 전화로 예약을 했다. 오후 경이었다. 사주를 처음보는 것이라 반쯤은 설렜고, 평소에 이런 미신적인 것에 회의를 느끼고 비판을 하던 사람이라 좀 부끄럽기도 했다. 복잡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그곳은 낡은 건물의 2층에 있는 사주카페였다. 구축답게 계단이 매우 좁았고 울퉁불퉁했다.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폭이어서, 내려오는 사람들에 어색하게 자리를 내주며 겨우 올라갔다.
들어가니 상당히 쾌적했다. 사주를 봐주는 할아버지는 문 바로 옆의 기다란 테이블에 앉아있었고, 그분이 없었다면 여느 카페와 다를 바 없었다. 사주 비용뿐만 아니라 따로 음료를 계산을 해야 했다.
한 자리에 앉아 짐을 풀고 더위를 식혔다. 아마도 아이스 초코를 시켰었다. 근처 자리에는 커플도 있었고, 앞 테이블에는 친구들인지 선후배관계인지 모를 무리가 조곤조곤 떠들었다. 나도 누군가와 함께 보러왔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한 징조를 혼자 듣게 되면 마음이 무거워질 것 같았다. 아이스 초코를 마시며 조금 두근두근했다.
미리 예약을 하고 와서, 한 팀이 빠지자 바로 내 차례였다. 할아버지는 키가 작았고, 금속의 뿔테 안경을 써서 엄격해보였다.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무얼 알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냥 전반적으로….” 약간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나도 내가 무엇이 궁금한지 몰랐다.
그는 내 이름과 이름한자, 생년월일을 물었고, 인적사항 표가 인쇄되어있는 종이에 붓글씨를 쓰듯이 한자로 나의 이름과 나이 등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서 책 같은 걸 뒤지면서, 아마도 나의 생년월일에 맞는 페이지를 찾았다. 책은 <주역> 같은 것이려나? 아는 게 없어서 눈만 끔뻑이고 앉아있는데, 할아버지가 다짜고짜 말했다.
"올해는 최악이야. 이게 내년까지 이어져. 내년은 더 최악."
최악이라니. 태연하려 했지만 눈앞이 조금 암담해졌다. 인생의 불투명성이 다음 해까지 이어진다니 마음이 안 좋았다. 할아버지는 여유로운 손놀림으로 종이에 'X'표를 하나하나 그리면서 아주 느긋하게 말했다.
"직업도… (X) 학업도… (X) 대인관계도… (X) 모두 최악이야. 특히 연애하지 마. 보는 눈이 없으니까. 지금 시기에 아무것도 결정하지 말고, 그냥 주변 사람들 말을 들어."
할아버지 왈, 나는 19살 때부터 기운이 매우 안 좋다나 뭐라나….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할아버지의 말들이 그간의 기억들을 새로이 재편하면서, '어쩐지…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이상한 리액션이 나도 모르게 솟아났다.
할아버지는 내가 성미도 급하고 시야가 좁고 단기전에 강하지만 장기전에 약하다며, "올인하지 마. 요즘 세상은 분산 투자해야 해." 라는 현명한 대답을 해주셨다. 그가 말해주는 모든 것에 내 심장은 매번 화살이 박히는 듯했다.
사실 사주를 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내가 그런 성격의 사람인 건 느끼고 있었지만, 이렇게 종이에 붓글씨처럼 써주시니 마치 내가 정말로 그런 사람인 것만 같았고, 스스로가 좀 미워졌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역시나 시야가 좁은 인간답게도, "내년까지 최악이라니 슬프네요…."라고 중얼거리니, 그는 다시 지혜로운 답을 주었다. "내년만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건데 뭐 그리 슬프나." 마음이 조금 찡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는, '내년까지는 최악이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딱 박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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