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이맘때쯤엔 사진학과 합격 통보를 받았다.
4년제 대학은 아니었지만, 사진 분야에서 알아주는 학교였다. 영은 잘은 모르지만 예술가가 되고 싶었고, 그리고 자신이 나름 사진을 잘 찍는다고도 생각했다.
서울에서 사진전을 여는 작가들이 그토록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자신의 작품이 그들의 작품처럼 멋들어진 갤러리에 걸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사진학과 입시였다. 낡은 카메라로 학교 구석구석을 촬영하고 사진 이론을 읽으며 세세한 입학 동기는 변하긴 했지만, 사진으로 예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변치 않았다. 영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한 뼘이 채 안 되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그 말들을 모조리 하고 싶었다.
1학년을 마치고 세부 전공을 정할 때 영은 예술사진 트랙을 밟기로 했다. 선택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동기 중에는 처음부터 사진기사가 되고 싶다던 놈도 있었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상업사진을 건드려보는 놈도 있었다. 영은 자신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남자랑 결혼할 생각이 없었으니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릴 줄 알아야 했다.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망이 더 컸다. 영은 눈을 질끈 감고 예술사진 트랙을 신청했다. 가슴 속에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영이 하고 찍고 싶었던 건 이상한 것들이었다.
이상한 것들을 아름답게 찍고 싶었다. 혹은 이상하게 찍고도 싶었다. 환영받지 못하는 모습을 온전히 찍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사람들이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을 자신의 사진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은 어쩌면 레즈비언인 영이 살면서 해야만 하는 발악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이상한 것들에 대한 연대 의식이 가슴 속에서 발버둥 쳤다. 그런 것들을 찍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만큼은 그런 것들을 찍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졸업 전시회를 했다. 영은 죽거나 썩은 식물에 노이즈 효과를 넣은 사진을 제출했다. 역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때 동기들은 대체로 진로를 결정한 상태였다―예술사진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전시회장에는 광고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예술사진을 제출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영이 알기로 그중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전공과 상관없는 분야로 취직하는 이들이 꽤 되었다.
영은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했다. 그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이 없었다. 다른 예술가들을 넘어설 감각도, 더 공부할 돈도 없었다. 졸업 전시회를 할 즈음이면 자신도 무언가 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제는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어떤 말을 하려고 하건 실력 없는 자신에겐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 시간마다 애매한 작품을 제출하다가 졸업 전시에도 애매한 작품을 제출했다.
전시 마지막 날, 어떤 남자가 영의 작품을 한참이고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돌아갔다. 사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잘 만든 작품도 이해하지 못하곤 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날 남자의 반응은 영에게 유달리 상처가 되었다.
한계가 왔다. 영원히 셔터를 누르고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영의 오랜 꿈이었으므로, 영은 자신에게 한 번의 유예기간을 더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