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요새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라는 게임을 재미있게 하고 있다. 이 게임은 선정성 없이 단순히 폭력성만으로 19금 판정을 받은 게임인데, 그 명성(?)에 걸맞게 각종 잔혹한 장면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초장부터 사람 고기 요리사가 등장하지를 않나, 주인공 아내의 시체를 살아있는 적 인형으로 만들어 주인공 앞에 들이밀지를 않나.
그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토머리’ 이야기였다. 토미와 메어리라는 한 쌍의 연인이 있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한 명의 사람이 된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한 덩어리로 합쳐지니 팔다리가 있으면 안 될 곳에 붙어있기도 했는데, 그 모습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너무 기괴하므로 생략한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기괴한 게임에도 사랑이 존재한다. 짝사랑하던 선배를 잃고 폭주하는 사 람, 사랑하는 연인이 죽자 그를 위해 사지로 뛰어드는 사람, 출장에 다녀오는 동안 사건으로 인해 아내와 아이를 잃은 사람... 심지어 내 입을 떡 벌어지게 했던 토머리 이야기도 결국에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장르가 장르니만큼 연인의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게임에서 로맨스가 나올 때마다 눈여겨보게 된다. 다른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지만 내 마음을 울리는 건 항상 로맨스다.
세상엔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다. 가족애, 우정, 로맨스……. 어떤 종류의 사랑이건 상대를 위하고 아낀다는 것은 동일하다. 거기에 로맨스가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여러 자극적인 감정이 추가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연인에게, 혹은 썸 타는 상대에게 설렘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며 서로에게 간섭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 어떤 사람들은 결혼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일생을 함께하겠다는 약속이다. 어떤 사람들은 서로 성향이 맞지 않아 이혼하기도 하고, 결혼 후 가정폭력의 늪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무난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레즈비언이고, 그래서 더더욱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결혼하고 싶지 않아한다. 뉴스에서 때때로 보이는 '비혼 인구 증가'를 보니 퍽 사회적인 현상인 것 같다.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이외에도 각자 다양한 이유로 일생의 반려를 찾지 않고 살아가기를 선택하고 있다.
반려자 없이 살아가는 삶이라니. 가끔은 충격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삶의 방식이 있지만, 내게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의 삶을 일생토록 공유하는 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려자가 있다는 건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한 사람이 있고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있는 동반자가 있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같이 헤쳐나갈 수 있는 반려자가 있다는 것... 한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살면 그만큼 싸울 일도 많다지만, 싸운 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조차 나한테는 로망으로 다가온다.
이런 좋은 이유들을 놔두고 사람들은 왜 반려자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걸까. 궁금해하던 와중, 한 사람이 생각났다. 과거에 좋아했던 사람으로, 연인은커녕 '일대일 관계'의 독점적 관계조차 원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런 걸 전혀 바라지 않고 서로 거리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는 반려자 없이 삶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었다. 누군가 내 인생 빈 공간에 침범해서 삶을 흔든다면 제법 짜릿할 텐데.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삶을 원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삶에 빈 공간을 허락하고 싶지 않은 사람. 누군가 자신의 삶을 뒤흔드는 것을 피해 삶에 대한 통제권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 혼자서 삶을 꾸려나갈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또 반려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나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는 게 즐겁다. 사랑하는 누군가에 의해 내 삶의 방향이 틀어지는 게 기분 좋다. 퍼즐 조각들이 서로 맞물리듯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의 삶을 메꾸고 싶다. 그렇게 해서 완전함을 느낄 수 있다면 참 좋을 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