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이 같은 사람과의 관계의 초반에는, 서로 없이는 못 살 정도로 붙어 다녔다. 갑작스레 친해져서 주변에서는 놀라워할 정도였다. 남들에게는 경위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과 서로에게 엉기어가는 감각이 황홀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고 기묘하게도, 그런 사람들과는 결말이 좋지가 않았다. 때로 관계에는 중대한 순간들이 있다. 특히 서로 가장 약해졌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관계의 향방이 갈리게 된다.
어리고 미성숙했던 사람들과는 예민한 시기가 닥쳤을 때 서로 잘 알고 있는 상처를 헤집는 걸 주로 택했다. 이 일은 겪을 때마다 충격이었다. 너무 잘 알아서, 더 치명적으로 아프게 대할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
우리에게 나쁜 일이 닥쳤을 때 거기에 대처하는 방식이 비슷한 것도 문제였다. 문제 해결이 잘 안됐다. 게다가 상처 받는 부분도 같아서, 자기 상처에 침잠하다보면 막상 서로를 위로할 힘도 없었다. 이렇게 관계가 끝나버리는 경험을 몇 번 하니, 피파의 편지가 구구절절 이해되었다. 피파는 참 현명한 사람이었다.
시오도 편지의 내용을 납득한다. “일찍 알아채지 못한 내가 너무 바보 같다”고. 시오는 피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면이 곧 시오가 순수하고 열렬한 사람임을 알려주기도 한다. 피파의 편지를 읽고도 사실 시오는 쉽사리 이 오랜 마음을 놓지 못한다.
“나는 ‘끌려 내려간다’는 생각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을 같이 끌고 내려가고 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 내가 바뀔 수는 없을까? 내가 강한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안 될 게 뭐지?”
‘안 될 게 뭐지’라고 되뇌는 시오. 그러나 그도 알고 있다. 아무래도 ‘안 될 것’이라는 걸. 피파는 나를 절대 보아주지 않겠지.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원하지 않겠지. 그도 ‘안 될 건 없겠지’라는 생각이, 희망사항에 가깝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나도 시오의 희망사항처럼, 사람은 다양한 방식으로 강해지고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성숙해지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건 알 수가 없다. 늘 내가 침착할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항상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수많은 변수들. 알 수 없는 사람들. 아주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가장 약한 곳이 공격받고, 때로 내가 누군가를 의도치 않게 상처주기도 한다. 절대적인 성숙은 없다. 지난 세월은 몸이든 정신이든 절대 쉽게 망각되지 않는다.
어릴 때는 무한히 하얗게 비어있던 인생이라는 스케치북에, 어느새 많은 것들이 적혀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가끔은 나쁜 것들을 지우개로 벅벅 지워서 없애려고도 해본다. 꽤 잘 지운다면, 멀리서는 새 스케치북–새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꾹꾹 눌러썼던 자리의 흔적은 남아 있다. 울퉁불퉁한 종이에 필기를 하면 글씨도 울퉁불퉁하게 써진다. 새로이 삶을 그려보려고 해도, 어느새 꾹꾹 눌려 패인 그 길을 따라 연필이 나도 모르게 흘러가고 있다. 깊은 상처란 바로 그런 것이다.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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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너무 닮은 사람과는 깊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연인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취미나 취향 정도만 겹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예전처럼 구태여 약점을 대어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너만이 나를 알아줘. 이런 문장을 가득 담아 편지를 보내던 관계들은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편지 한 번 주고 받지 않거나, 연말에 상투적 인사문구를 곁들인 편지를 받은 이들이 가장 깊고 오랜 인연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닮아야 친해질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함께 평생을 나야 하는 사람이라면, 반려자라면 나와 좀 다른 사람이 좋은 것 같다. 반려자로는 시오를 선택하지 않은 피파처럼. 수많은 관계가 오고가고 어느 한 사람도 제대로 잡기 힘든 세상살이. 지금, 내게는 피파의 안목이 필요하다. 나를 잘 지키기 위한 거리를 정확히 아는, 기민한 감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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