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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졸업식을 끝내고 가족과 식당으로 이동하기 위해 아빠 차로 향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아무 생각 없이, 다신 오지 않을 유치원을 나섰다.
“매린이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네. 매린이는 뭐가 되고 싶어?”
눈앞에 1년간 탔던 유치원 차가 보인다.
“음... 경찰차요.”
“경찰 아니고 경찰차?”
“네.”
경찰차, 내 기억 속에 있는 가장 어린 나의 꿈이다.
*
나는 항상 되고 싶었던 것이 많았다. 그렇다고 이유가 기막힌 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교실 뒤, 벽에다 자신의 꿈을 그려 붙이라고 했을 땐 항상 빨간 베레모를 쓴 화가를 그렸다. 피아노 상을 좀 받아온다 싶으면 피아니스트를 그려냈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고 ‘짱변(장 변호사)’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가족들 앞에서 변호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 중학생 때는 웹툰 작가도 꿈꾸었다.
중학교 3년 동안 공부라는 풍파를 맞아버렸다. 멋있는 담임선생님을 따라 과학 교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부모님이 원하시는 초등교사를 꿈꾸었다. 문과로 1년을 살았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이과로 바꾸고 결국 나는 지금 간호학과에 정착했다.
그렇다면 나는 간호에 큰 뜻을 두고 있는 걸까? 전공을 배우며 하루하루가 두근두근하고 새로운가? 어서 빨리 실전에 투입되고 싶은가? 전혀 아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동기들이 간호 관련으로 미래 계획을 세울 때, 스펙을 쌓겠다고 이것저것 챙길 때 나는 옆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다. (비유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딱 지금의 나를 설명해준다.)
그저 회피하고만 싶다. 간호사로서의 내 미래가 도저히 떠올려지지 않는다. 어떻게 내가 간호사라는 꼼꼼한 직업을 해낼 수 있단 말인가. 도망가고 싶지만, 도피처도 없다. 다른 학과들도 매력이 없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다.
이제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는 하등 관심이 없다. 수능이라는 큰 벽을 넘어버리고 대학교에 도착했다. 2022년이라는 한 해는 인생의 많은 것을 뒤엎어버렸다. 하루하루가 틀에서 벗어나는 생활이다.
가장 큰 변화는 고등학생때와 달리 하루하루를 내 목표 꿈, 목표 대학을 위해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멋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에 나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고, 명사의 꿈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아 버린 것. 우물 밖에서의 1년이라는 시간이 우물 안에서 20년을 살아온 개구리를 단번에 바꾸어 놓았다.
*
‘무엇’의 꿈은 질리도록 많이 꾸었다. 스스로가 원해서, 또는 부모님과 사회가 원해서 이미 충분히 꾸었다. 세상은 더 구체적인 ‘무엇’을 찾아보라며 대학에 나를 던져두었지만, 내 관심은 이미 다른 곳으로 돌려져 버렸다. 이제는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더 눈길이 간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막연히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대뜸 친구가 질문한다. 하나하나 설명하자니 원하는 것이 너무도 많아 정리되지 않는다. 생각을 정리하느라 입을 열지 못하고 있으니 친구가 질문을 바꾼다.
“그럼 어떤 사람을 좋아해? 외적보다 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자기 계발과 자기관리를 하며,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은 사람. 주변 사람들을 질투하고 미워하기보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해주며 편하게 해줄 수 있는 멋있는 사람. 손가락을 하나 둘 접으며 신나게 말하기 시작한다.
물꼬가 트인다. 친구는 웃으며 말한다.
“그게 너가 되고 싶은 모습인 것 같네.”
“... 정답이야.”
덧붙여, 나는 내가 학업에 적당히 충실하면서도 완벽주의 성향을 버려 결과에 스트레스받지 않길 바란다. 문제가 생겼을 때 회피하는 버릇을 버리고 어떨 땐 원인을 해결하려고 달려들기도, 어떨 땐 유머와 재치로 승화시키기도 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 자신을 믿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받지 못해도 쉽게 상처받지 않는 외유내강의 사람이 되고 싶다.
이렇게 자신에게 바라는 바를 나열해보니 느껴진다. 어쩌면 ‘어떠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꿈은 선생님, 웹툰 작가 보다 더 이루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임용고시를 치고, 만화계에 데뷔를 하면 어쨌든 꿈은 이루어지는 후자에 비하여 전자는,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계속해서 수정해나가도 수정할 것은 새롭게 보이기 마련. 어른들이 혼낼 때 항상 아이를 형제, 친구, 옆집 아이와 비교하듯, 결국 나 역시도 나의 양육자로서 나를 내 이상형과 비교하며 꾸짖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하나의 꿈을 더 덧붙이려 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내가 원하는 모습들이 지금의 나 자신과 많이 달라도 슬퍼하지 않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쉬울 수도, 어쩌면 가장 힘들 수도 있는 꿈.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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