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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겐 징크스가 있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날씨를 예측하려고 애쓴다. 특히 비가 올지, 안 올지에 대해서. 물론 ‘내일은 비가 올 것이다’라는 예측은 검색만 하면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달 후라면? 일상 속에선 한 달 후의 날씨 예측은 별 필요가 없다. 다음 날의 날씨를 확인하고 우산을 챙기면 그만이다. 여행처럼 중요한 계획을 세울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장마와 태풍 기간을 피하고 비가 오지 않기를 빌며 여행 계획을 세우곤 한다. 그러나 내가 가진 징크스를 증명하듯 특별한 날들엔 자주 비가 왔다. 그래서 여름이면, 비 오는 날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실내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평화롭게 커피를 마시던 날이 아니라 비 아래에서 엉망진창으로 울고 쫄딱 젖었던 날들이.

 코로나가 없던 시절의 여름엔 야외에서 공연이나 페스티벌이 종종 열리곤 했다. 예전의 나는 공연에 심취해 있었기에 온갖 공연을 보러 다녔었다. 여름이 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공연은 한 가수의 야외 콘서트다. 그 공연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단 엉망으로 비를 맞았기 때문이다. 한낮의 더위가 가신 여름밤의 공연을 기대했건만, 하필이면 그날 비 예보가 있었다. 공연이 시작할 때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슬비가 아니었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거센 비였다. 빗방울이 어깨를, 우비 모자를 뒤집어쓴 머리 위를 툭툭 때리고 전광판에선 거대한 고래가 헤엄쳐 다녔다. 나는 그 공연에서 대성통곡까지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모두 괜찮아질 거라는 가사가 나오는 순간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비가 많이 오므로 어차피 티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쫄딱 젖은 채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을 탔다. 다음 날 몸살에 걸려 일어나지 못했고, 다른 약속을 모조리 취소했다.

 한 페스티벌에서도 속수무책으로 비를 맞았다. 페스티벌이 열린 장소는 버스로 세 시간을 가야 하는 꽤 먼 곳이었다.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숙소도 예약했기에 나와 친구들은 들떠 있었다. 페스티벌 당일, 비가 아니라 흐림이라고 되어 있는 예보를 믿으며 페스티벌 부지에 돗자리를 폈다. 맥주를 구매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돗자리로 돌아오는 순간 비가 쏟아졌다. 우리는 우비가 없었기에 근처 매점으로 뛰어갔지만, 비싼 돈을 주고 얇은 우비를 겨우 살 때쯤엔 이미 비에 온몸이 젖은 후였다. 전부 앞머리가 이마에 찰싹 달라붙은 채로 셀카를 몇 장 찍었고 공연을 조금 보다 지쳐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꼭 내가 비를 몰고 온 것만 같았다. 여름에 멀리 외출만 하면 비가 쏟아진다, 이런 징크스를 가진 내가 끼어있지 않았다면, 비가 그렇게 많이는 안 오지 않았을까? 쾌적하고 행복할 수 있었던 기억을 내가 어그러뜨린 것 같았다.

 비 때문에 계획이 달라졌던 여름날은 이 밖에도 많았다. 한강의 무지개 분수를 보지 못했고, 물놀이 대신 비가 쏟아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라면을 먹었다. 일주일 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고 날짜를 앞뒤로 바꿔보아도 약 올리듯 내가 외출한 날에만 비가 쏟아졌다. 당시에는 무척 속상했다. 예측은 하나도 맞지 않고 심혈을 기울여 세운 계획이 비 때문에 망가졌다고 여겼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인생의 많은 부분이 그렇다. 예측을 할 수 없는 것들이 많고, 예측하더라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건이 전개되기도 한다. 어쩌면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하려 하고, 안 좋은 것을 피하려는 태도를 바꿔보라고 하늘이 비를 뿌리는 것인지도 몰랐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즐기라고 말이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 앞에서, 아무리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더라도 결국 젖게 되는 여름 앞에서는 차라리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살면서 언제 마음껏 비를 맞아보겠는가. 엉망진창 젖어버린 여름의 기억도 햇볕 아래 바삭하게 말리고 나면, 기억의 서랍 아래 차곡차곡 개어서 넣어질 것이다. 지금 돌이켜봤을 때, 비를 맞았던 날들이 나쁘지 않게 기억되는 것처럼. 그러니 앞으로 어딘가 멀리 떠나는 특별한 날,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려고 한다. 비가 올지도 몰라, 하지만 괜찮을 거야.

어느 사회초년생의 여름 블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