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복수 전공한 학과 교수님과 처음으로 진로 상담을 했다. 교수님이 내게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셨을 때, 나는 출판사에 취직해서 편집자 일을 하는 동시에 글을 꾸준히 써서 등단하는 게 목표라고 말씀드렸다.
상담을 하면서 내 장래 희망에 대해 더욱 자세히 생각해볼 수 있었고,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일련의 경험을 거치며 다짐한 것이 있었다. 이번에 가질 꿈은 꼭 누구의 입김에도 휘둘리지 않겠다고.
나는 항상 꿈을 포기해 왔다. 처음으로 포기했던 꿈은 만화가였다.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그려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나의 낙이었다. 가방에는 항상 노트와 펜, 색연필이 있었고 쉬는 시간에는 그 도구들을 이용해 만화를 그렸다. 미술 수행평가에서 만점을 받지 않은 적 또한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내 꿈은 만화가였다. 그러나 부모님은 내가 만화가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아마 인문계로 진학하기를 바라시는 것 같았다. 나는 내심 만화를 전공으로 삼고 싶었지만, 따지고 보면 만화가가 돈을 못 버는 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모님을 설득할 수 없었다.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하고 싶은 건 많았다. 다른 친구들보다 언어 점수가 잘 나왔던 나는 어디든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도 만화를 그리면서 다시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보았고, 대학생이 된 뒤에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하고 싶은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은근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혹자는 내가 부모님을 설득하고 가고 싶은 길을 가면 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그럴 용기가 없었다. 내 생각이 치기 어린 날의 실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께 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쳤다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그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하루는 엄마가 그 꿈들에 대해 내가 스스로 포기한 꿈이라고 말했는데, 정말로 그랬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국어국문학과를 복수 전공하게 되면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내가 지금까지 설정한 꿈 중 가장 어려운 꿈일지도 모른다. 등단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소설가로 활동하면서도 투잡을 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꿈을 포기해 왔기에 이번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진로를 정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글을 배워 본 경험이 드물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인 것들을 올해 들어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글이 폼만 잡고 실속은 없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소설 창작 강의에서 교수님께 혹평을 받았을 때는 정말 내 글이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주최하는 문학 대회가 있었다. 대상 상금이 100만원이라는 말에 예전에 썼던 글을 다듬어서 참가해 보았는데, 대상은 아니었지만 우수상을 탔다. 내 글이 그렇게까지 나쁜 글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도 얻었으니 이제부터는 내 글을 믿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잡았다. 이번 꿈은 절대로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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