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시절이 지나, 20년도가 밝았다. 스무 살 1년 동안 열심히 돈을 모았다.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었지만, 스물 하나부터 꼭 어디로든 해외여행을 가리라고 막연하게 꿈꾸고 있었다.
사실 언니와도 꼭 한 번 같이 여행을 가고 싶었다. 부디 언니가 맛깔나게 푸는 수많은 여행 이야기 중 하나에, 바로 우리의 것이 생기기를 바랐다. 뉴질랜드나 터키. 언니가 아직 안 가봤다던 나라들을 가끔 생각했다. 그들 중 하나로 나의 여행기를 시작해보고 싶다는 추상적인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이 지나, 2020년 3월이 되었다.
왜 항상 꿈은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 모두가 알다시피 대 바이러스의 시대가 닥쳤다. 입출국이 봉쇄되었다. 공항이 텅텅 비었다. 시작도 하지 못한 나의 꿈…. 가슴이 쓰라렸다. 아마 여행에 미쳐있는 언니는 더 괴로웠을 것이다. 거리두기가 심화되자 언니도 만나지 못했다.
확진자가 점점 늘어가면서, 방구석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게 일상의 전부가 되었다. 친구들에게 이번 해부터는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여행 유튜브라도 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그 즈음 언니에게 근황을 물어보니, 요즘 여행을 못 가서 대리만족 삼아 여행 유튜브를 보고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유튜브로는 음악만 듣던 나였다. 한 번 봐볼까, 난생 처음으로 여행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여락이들’, ‘원지의하루‘ 등 20대의 여성 유튜버들이 꽤 있었다. 세계 일주를 한 사람들도 많아서 신기했다. 영상 외에도 친절하게 많은 정보를 알려주는 여행 블로그도 많았다. 선명한 고화질로 여행지의 풍경이 사진, 영상으로 나와 있었다.
그들의 여행은 다양한 사건들과 도전으로 재밌게 연출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백 몇 개국을 가봤다는 사람도 부럽지 않았다. 조금 찾아보다가 금세 지겨워지고 말았다.
이상했다. 여행을 아주 많이 가는 게 꿈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여행에 대해 흥미가 없었다. 대단한 여행가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그들을 보며 꿈이 다잡아지지 않았다.
새삼 가족들과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행해보고 싶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던 것 같았다. 저녁 식사하며 EBS의 ‘세계테마기행’을 볼 때, 어머니가 옆에서 ‘안수야, 저거 봐봐. 한 번 가보고 싶지 않니?’라고 물을 때면 ‘그러네요.’ 하고는 맛난 반찬으로 시선을 돌리는 게 나였다.
여행 그 자체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지금껏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고, 그저 남에게 좋아 보이니까 꿈을 정한 것이다. 한심하게도 그랬다. 하지만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분명 언니만큼 부러워한 사람은 없었다. 단지 여행을 많이 간 것이 부러운 게 아니라면, 내가 언니를 부러워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확실한 건, 언니라는 사람이 들려주는 여행은 매력적이었다. 나는 여행가로서 언니의 성격과 태도를 부러워했다. 해외여행 이야기는 언니의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들일 뿐이었다. 언니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환상적인 여행지가 배경이어서가 아니었다.
행복한 이야기만 있어서도 아니었다. 자세히 들어보면 언니의 여행담에는 불쾌한 사건도 많았고, 몇 번은 도난이나 범죄를 겪기도 했다. 친구와 갔던 여행이 곧 친구와 아주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일로 많이도 울었다했다.
하지만 언뜻 언니가 이야기하는 모습만 보면 마치 모든 이야기가 즐겁기 그지없게 보였다. 주의 깊게 듣지 않는다면, 언니의 햇살 같은 웃음과 활발함만 느끼게 된다. 처음 몇 달은 언니와 대화하면서도 이 괴리를 인식하지 못했다.
슬프고 힘들고 괴로웠던 이야기도, 재치 있게 이야기로 풀어내어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드는 능력 - 이건 정말 대단한 능력이었다. 현재 스물셋의 입장에서, 3년 전 같은 나이였던 언니는 어쩜 그렇게 성숙하고 능숙했는지 놀랍다.
첫 만남에서 낯선 이들이 가득한 테이블을 주도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언니는 관계의 결말이 어떻든 간에 항상 사람들과 어울렸다. 성격이 좋았다. 자기가 웃음거리가 될 법한 일화까지도 개의치 않고 풀어냈다.
입담도 정말 끝내준다. 육대륙을 걸어냈던 튼튼한 다리도 빼놓을 수 없다. 단지 여행을 많이 간 것뿐 아니라 이러한 점들이 그토록 언니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언니는 여행을 많이 다녀서 여행가가 아니라, ‘좋은 여행가의 태도‘를 가져서 멋진 여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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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도 이후부터 올해까지 언니는 해외여행을 가지 않았다. 2년간은 바이러스 때문에 여행이 아예 불가능했던 것이지만, 그 뒤로는 취업을 준비하느라 그랬다. 그럼에도 나는 언니를 만나는 게 한 번도 기대 안 된 적이 없다.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언니의 대학 생활 이야기도, 팀플이 잘 안 되어서 힘들다는 흔한 일화도, 취업준비 때문에 우울하고 미쳐버리겠다는 이야기도... 왠지 언니의 입으로 들으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비슷한 삶을 가진 사람이 몇 보따리는 될 텐데, 언니는 자신의 삶 보따리를 신기할 정도로 귀하게 보이도록 하는 재주가 있다.
여행에 관한 가장 유명한 산문 중 하나인, 김영하 작가의 책 <여행의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신비로움. 여행가를 ‘진정한 여행가‘로 불리게 하는 이 태도를 가진 ‘삶의 여행가’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언니에게서 닮고 싶은 점이었고, 진정 이루고픈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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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삶이라는 여행을 잘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나는 소심했다. 여행에서도 그래왔다. 화려한 포즈로 사진에 찍히고 싶었지만 다른 이에게 부탁할 용기가 없었다.
남들은 열심히 찍어주면서도, 그들 중 하나라도 ‘안수 씨도 찍어줄까요?’하기 전에는 선뜻 요청하지 못해서 결국 아무 사진도 남기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남의 사진 귀퉁이에 우연히 걸린 나를 열심히 찾아보곤 했다.
나에게 삶은 꾸역꾸역 지나보내는 것. 아주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즐거운 날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 재미없는 일상을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저 채워지지 않은 날들의 서글픔을 꾹꾹 삼키고, 잠들기 전 심장께를 한 번 쓸어주기밖에는 못했다.
언니를 만나면서 많이 바뀌었다. 뭐든 태연하게 임하는 법을 배웠다. ‘아님, 말고!’ 정신으로 예의를 지키면서 다가간다. 예전에는 슬픔, 우울을 유쾌하게 승화해내지 못했다. 이제는 알바에서 만난 진상도, 멍청한 짓을 벌인 나도 편안하게 희화화하며 웃는 편이다. 어색한 술자리에서 감자튀김 같은 안주만 소심하게 집어먹던 사람에서, 좋은 이야기를 안줏거리로 건네줄 수 있는 사람. 이제는 꽤 그렇게 된 것 같다.
이 꿈은 결코 끝나지 않고,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진정한 여행가로의 꿈과 삶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 많은지가 아니라 행복을 찾아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의 ‘행복할 결심’ 코너가 떠오른다. 불행한 일이 가득한 인생일지라도, 부디 행복해질 결심을 하는 것. 다음의 행복을 기대하는 연습을 하는 것.
-가장 존경하는 여행가에게서 배운, 문득 잊을 때마다 심장에 새길 깨달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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