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후로, 나는 나름대로 저 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느 여름, 소설 창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강사였던 작가님은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결말을 정해두는 게 필수적이라고 하셨다. 쓰다 보면 정작 그 결말로 귀결되지 않더라도 우선은 상정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예를 들어 우리가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을 도착지로 설정했다고 생각해보자. 여행을 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 부산까지 가지 못하고 울산쯤에서 멈추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울산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목적지를 부산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출발 전에 목적지를 반드시 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 내가 원하는 결말, 즉 이루고 싶은 꿈을 정하고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말이다. 가다 보니 결국 그곳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다다른 풍경은, 내가 그것을 꿈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 있다. 애초에 꿈꾸지 않았다면 걸음조차 떼지 않았을 테니.
내가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꿈들 중 하나엔 영어를 한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는 것이 있다. 몇 년째 진행 과정에 있는 꿈이며 과연 이루게 될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직도 어려운 뉴스를 힘겹게 이해하고, 각종 영어 시험에서 애를 먹고 있다. 그러나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말 것이라고 마음먹은 후로 많은 게 달라졌다.
팝송을 들을 때 귀에 들어오는 몇몇 가사가 즐겁다. 한국어로 출판되지 않은 흥미로운 소설을 느릿하게 읽어가는 것도, 한국어 자막이 달리지 않은 해외 드라마를 반복해 보며 이해하는 것이 좋다. 외국인 친구들과 단순하게나마 대화를 나누고 웃는 일도 마음에 든다. 나는 끝끝내 영어권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처럼 영어를 말할 수 있지 못할지라도, 영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내가 겪은 풍경들은 다채롭다.
이런 방식으로 ‘과정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이해하는 순간, 목적지에 다다르고 말아야 한다는 것에서 오는 많은 부담감과 압박감이 사라진 것 같다.
특히 내 꿈 중 하나에는 원하는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해 많은 독자를 만나는 것이 있다. 그렇게 꿈을 정하고 나니 엄청난 부담감이 느껴졌었다. 그러려면 우선 주요 신문사나 출판사에서 등단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700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도 꾸준히 좋은 작품을 써야 어렵게 단행본 출판의 기회가 온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다고 해도 작품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한때엔 숨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 문창과 준비를 하기도 했다. 문장력을 기르기 위해 좋아하는 작가들의 소설을 필사했다. 여러 번 소설을 구상하고 쓰고 날카로운 합평을 받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작가들처럼 문장이 써지지 않는다는 것에서 오는 열등감에 눈물이 떨어지곤 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질식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무서웠다. 이렇게 힘겹게 많은 시간을 들여 글을 쓰고, 내 글에 대한 모욕적인 말까지 들어가며 소설을 쓰는데,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 몇 년을 써도 등단하지 못한다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겁이 났다.
작가는 타고나는 것이고 나는 그런 빛나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황정은 같은 작가를 보며 절감하기도 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과정이라는 말을 받아들이게 된 후로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한계 없이 꿈을 크고 행복하게 꾸며 그걸 향해 걸어가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숨이 조금씩 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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