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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편에 실을 글을 찾아보던 중 한 소설을 발견했다. 4000자가 조금 안 되는 콩트였는데, 시작하는 문장이 이러했다: 영에게 11월은 열두 달 중 가장 우울해지기 쉬운 시기였다.

 11월 말은 꼭 연말 같았지만 그 시기에 사람 만날 일은 드물었고, 가을인지 겨울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날씨가 추워서 사람을 쓸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확실히 11월은 쓸쓸하다. 12월에는 며칠에 한 번씩 연말 약속을 가지만 11월에는 그렇다 할 사건이 없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고 해봤자 학교에서 몰려오는 과제와 연말 약속 준비 정도였다. 

 게다가 작년에는 휴학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람 만날 일이 더더욱 없었다. 친구들은 과제를 하느라 바빴는데 나는 만날 사람도 할 일도 없어서 집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즈음이면 크리스마스 캐롤도 들려오기 시작하는데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서 쓸쓸했다.

 

 12월이 시작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단 해의 마무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재학생이든 휴학생이든 할 일이 많다. 12월 중순부터 친구들과 놀 약속을 하나둘씩 만들어야 하고, 그에 따라 일정도 관리해야 한다. 어디에서 만나고 무엇을 하고 놀 것인지, 만약 밤을 새워서 놀 거라면 숙소는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 보면 12월이 금방 간다.

 이 모든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은 단언 크리스마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달 전부터 나무마다 둘러진 가랜드며 각종 조명들이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건 물론, 크리스마스를 핑계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여력이 된다면 유명한 가게에서 케이크를 사 오기도 하고, 집에서 와인을 마시며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한다.

 작년에는 크리스마스 전후인 23일부터 26일까지 여러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바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친구 자취방에서 선물을 교환하기도 했으며 어떤 친구들과는 호텔을 잡아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기도 했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 있었다. 다음 크리스마스에도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왠지 이번에는 연말이 기대되지 않는다. 물론 아예 기대되지 않는 건 아니다. 이미 11월 초부터 동아리 사람들과 할 크리스마스 파티를 계획하고 있었다. 운영진들과 파티룸 답사도 가보고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시험 날짜만 나오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 약속을 가지려고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여느 11월 말과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 데에 몰두하고 있는데 글쎄, 이 모든 과정이 작년만큼 설레지가 않는 것이다. 왜 그런 걸까. 크리스마스면 설레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던 어느 날, 나는 내가 연말에 설레지 않는 이유를 알아냈다. 체력이 없어서 설렐 기운도 없었던 것이다.

 확실히 이번 학기에는 심각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술을 마시는 게 일상이었다. 이 정도로 먹으면 간이 상할 만도 하다. 그러다보니 12시간씩 자도 피로가 가시질 않았다. 5시간을 자던 12시간을 자던 버스, 지하철, 강의실 어디서든 졸았다.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질 못하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잠을 잤다. 이렇게 잠을 자면 술은 언제 마시는가. 물론 술을 마실 때에는 새벽 두 시까지도 멀쩡하게 살아있다. 이러다 보니 건강이 나빠지기만 한다.

 나는 노는 걸 좋아한다. 특히 사람들을 많이 만나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한다. 그런 내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연말이 기대되지 않는다니…….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위기감을 느낀 뒤 나는 술자리를 한 주에 한두 번 정도로 줄였다. 건강을 위해서는 식단 조절과 운동도 필요하지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술자리를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효과가 눈에 띄게 보이지 않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건강을 챙기면 크리스마스 때에는, 못해도 언젠가는 체력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아무튼 술도 줄였으니 다시 크리스마스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퀴어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올나잇 파티를 하고 다음날에는 인터넷에서 만난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기로 했다. 파티 준비는 이미 열심히 하고 있다. 25일에 만날 친구들과의 약속도 장소와 콘텐츠를 준비해야 한다.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조금 쉬고 나면 연말이다. 그런데 아직 연말 약속은 잡히지 않았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연말엔 누구와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번 해에는 제야의 종을 직접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너무 위험할 것 같고, 크리스마스 때처럼 친구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는 게 최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야의 종은 TV로도 볼 수 있으니까 방을 잡아 텔레비전을 틀어 놓거나 TV를 틀어 주는 술집에 가고 싶다. 종이 칠 때까지는 각종 음악 방송도 있을 테니 그걸 들으면서 친구들과 도란도란 수다도 떨고 싶다. 다음 해로 넘어가기 전까지 카운트다운도 해 보고, 새해에 듣는 첫 음악이 그 해를 결정한다는 미신을 잠시만 믿어 보며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듣고도 싶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연말을 아주 기대하지 않는 건 아닌 것 같다. 이번 연말도 모쪼록 즐겁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