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나는 절에 있었다.

한해가 다 가기 전에 템플스테이를 꼭 가보고 싶었다. 연말이 되자 도시 삶의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 마음을 개운하게 할 겸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때마침 크리스마스 직전, 동짓날 즈음에 시간이 났다. 대중교통을 타고 갈 수 있는 수도권의 한 절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예약해서 혼자 떠났다.

그날에는 나 이외에도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분들이 네 명 더 있었다. 기다란 한옥 민박집 같은 곳에 각자 원룸만한 크기의 방을 배정받았다. 내가 신청한 프로그램은 ‘자유형’, 즉 108배나 스님과의 말씀 같은 프로그램이 없는 것이었다. 다만 절에서 나가지 않고 밥은 정해진 급식소에서 먹어야 했다. 유일한 행사인 7시경에 하는 저녁 예불은 자율적으로 참여하면 되었다.

다들 오후 3시경에 모두 안내소 앞으로 모였다. 안내소 직원이 몇 가지 안내사항을 전달했다. 그런데 직원이 유독 당부하는 사항이 하나 있었다.

“7시에 저녁 예불 장소로 오실 때에 여럿이 오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밤에 절대로 방에서 나오지 마세요. 가로등도 없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예불 끝나면 곧장 방으로 들어가세요. 밤에는 절대 나오지 마세요.”

도대체 얼마나 어두우면 이렇게 경고하는 걸까? 감이 안 잡혔다. 만화에서는 주인공들이 꼭 저런 당부를 어기고 밖으로 나오던데…. 실없는 생각이나 하며 넘겼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다 같이 절을 한 바퀴 돈 후에 절 안에 있는 카페에도 가고, 저녁 5시경에는 급식소에서 밥을 먹었다. 저녁 예불 시간까지는 배정받은 방에 뜨끈하게 보일러를 넣어놓고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6시 50분경이 되었다. 옆방 사람들이 예불에 참여하려고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나갈 채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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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 열자마자 조금 놀랐다. 동짓날이기도 했지만 확실히 산중이라서 그런지 거의 완연한 밤이었다. 하늘은 우주의 남색 심연 같았고 바닥이나 어렴풋이 보일 정도로 주변이 어둑어둑했다. 옆방 분들과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얼른 예불 장소로 이동했다. 5분 남짓 걸어가는 동안에도 세상이 더 어두워지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예불에서는 열 분정도의 스님들이 목탁 소리에 맞추어 불경을 읊으셨고 그 후에 스님들이 절을 할 때에는 우리도 함께 절을 했다. 예불 시간은 20분이나 되었을까. 예불을 마치고 바깥에 있는 신발장으로 갔는데 너무 어두워서 신발이 분간이 안 되었다. 핸드폰 라이트를 켰을 때 핸드폰 빛이 어둠에 먹히는 것 같은 느낌은 처음이었다. 가느다란 빛의 실타래 정도밖에 안 되어 보였다. 겨우 신발을 찾아 신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계단이 가늠이 잘 안 되어서 다리가 조금씩 떨렸다.

그야말로 암전. 세상의 암전이었다. 머리가 지끈지끈할 정도의 어둠은 처음이었다. 핸드폰 전원을 누르면 액정이 까매지는 것처럼, 세상도 완전히 꺼져버린 것 같았다. 나보다 앞서 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따라가서야 겨우 내 방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하마터면 길을 잃을 뻔했다. 괜히 직원이 그렇게 당부한 게 아니었다. 밤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문을 닫고 방에 들어와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었다. 밤이 이렇게 무섭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단지 어두운 골목을 걷는 느낌이 아니었다. 여기는 산의 한가운데였다. 어둠을 더 어둠답게 만드는 고요함도 무서웠다. 고요한 밤, 거대한 밤. 역설적으로 고요해서 시끄러웠다. 내가 내는 모든 소리가 하나하나 잘 들렸고, 마음이 이상해서 다리를 웅크리고 앉았더니 심장 소리가 쿵 쿵 귀에 박히듯 들려왔다.

기분을 바꾸어보려고 폰을 하는데 화면 오른쪽 위의 시간을 볼 때마다 마음이 힘들었다. 도통 시간이 가지를 않았다. 밤이 이렇게 견디기가 힘든 것이었나! 이렇게만 시간이 흐른다면 영원히 밤일 듯했다.

양손으로 뺨을 벅벅 긁듯이 마른세수를 했다. 보일러를 너무 세게 틀어서 그런가.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살짝 문을 열었다. 밤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절대적인 어둠이었다. 홀린 듯이 내 방의 불을 끄고 마루로 엉금엉금 기어나가 걸터앉았다. 의문이 들었다. 내가 눈을 감고 있는 걸까? 핸드폰에서 전원 버튼을 누르면 멀건 어둠의 액정만 보이는 것처럼, 세상도 전원이 꺼져버린 것 같았다. 나도 물끄러미 어둠을 응시했다. 분명 낮에 보았던 방 앞의 풍경 그대로일 텐데, 갑자기 이곳에 검은 상자가 씌워진 것 같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고요하고 거대하고 고독한 그날 밤.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토록 시간이 느리게 가던 밤은 없었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부터 내가 아는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씩 헤아려보아도 밤이 끝나지 않았다.

어둠의 허공을 뒤적이면 무엇이든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손을 내밀어 보기도 했다.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잠깐 명상을 했는데, 눈을 떴을 때에도 눈 감은 풍경과 같은 게 믿기지 않아 눈을 비벼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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