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이상'
열여덟 번째 이야기가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착한여성들입니다.
오늘은 '이상'에 관한 이야기를 가져왔어요.
[이상]
1. 수량이나 정도가 일정한 기준보다 더 많거나 나음. 기준이 수량으로 제시될 경우에는, 그 수량이 범위에 포함.
2.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
3. 정상적인 상태와 다름.
4. 이미 그렇게 된 바에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이상'은 어떤 '이상'인가요?
안착한여성들도 저마다 다른 '이상'을 생각하며 이번 글을 준비했습니다.
한 주제에 너무 다른 글이 담겨서 이상하다구요?
하지만 안착한여성들을 구독해버리신 이상,
아주 이상적으로 통일된 글만을 볼 수는 없으실 겁니다.
안착한여성들이 말하는 각자의 이상,
이상하게 궁금해지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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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조선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여전히 종종 찾아볼 수 있는 말이다. 한땐 이 단어가 유행처럼 자주 쓰이곤 했다. 3포 세대, 5포 세대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이다.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는 한국의 현시대를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헬조선하면 3년 전 쯤 눈에 띄었던 책이 떠오른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이다. 이 소설은 한국을 떠나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가는 20대 후반의 여성 이야기이다. 장강명 작가의 다른 책을 빌리려다가 제목이 눈을 찔렀고, 정신이 들고 보니 이 책을 대출하고 있었다. 궁금했었다. 왜 한국이 싫은지. 그리고 나도 한국이 싫은데 과연 내 이유와 비슷할지. 이 소설은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었는데, 이는 곧 이 소설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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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막연하게나마 호주로의 워킹홀리데이, 혹은 아예 해외로의 이민에 대해 상상해보곤 했다. 해외에서의 삶을 생각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그러한 결정을 한국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한국 사회에 대한 피로도를 표출하는 댓글들 역시 인터넷 상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러한 의견에 공감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한국은 내가 태어난 곳이자 소속된 공동체이지만 선명한 문제점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한편, 한국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유럽이나 미국 같은 나라들이 이상화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그들의 교육과 직장 문화부터 남들 눈치를 덜 보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삶의 태도 같은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 그 나라들이 훨씬 더 이상적인 나라이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면에선 한국이 낫고, 어느 면에선 다른 나라들이 낫다. 즉, 완벽하게 이상적인 세계란 아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염세주의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에 대한 애정 아닌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 애정은 바로 인류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믿음에서 온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당시 사회의 강한 반발을 감수하면서도 시대를 바꾼 사람들도 있고, 각 학계도 부단히 발전을 이루어왔다. 인권 같은 경우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훨씬 진보했고, 여러 면에서 세상은 전보다 나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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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화를 가장 많이 체감한 것은 교육계에서였다. 내가 기억하는 공교육이란 주입식 위주인 수업에 시험을 보고 등수를 매기고 그걸 또 공개적으로 처형하듯 발표하는 것이었다.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도 선생님이 시험을 가장 잘 본 학생의 이름을 부른 뒤 교탁 앞으로 나와 제일 예쁜 지우개를 골라가게 하셨다. 그 아이의 뒷통수엔 부러움이 가득한 아이들의 눈이 꽂혔다.
고등학생 때는 전교 30등까지를 모아서 소위 공부 잘하는 반을 따로 모아놨었는데, 매학기마다 그 인원이 ‘물갈이’ 되었었다. ‘물갈이’를 알리는 방식은 담당 선생님이 아침 조회 시간에 교실의 문을 열고 그 반에 배정된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는 식이었다. 물론 이런 방식이 경쟁을 부추겨 공부하게끔 하는 동기가 될 수 있겠지만, 학생들을 획일적으로 판단하는 잣대가 초등학생 때부터 적용된다는 것은 늘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그 나이 때는 어떤 틀에 갇히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탐구하며 자신과 주변 환경을 알아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을 만나는 건 즐거웠지만 학교라는 공간 자체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건 폭력적이라고까지 느껴지는 그 획일적인 잣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학교는 변화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건 혁신 학교로 지정된 초등학교에 방문을 갔었던 때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략 10년이 지난 후 방문한 학교는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우선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쾌활했다. 학교가 남향인가, 괜히 이렇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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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화를 가장 많이 체감한 것은 교육계에서였다. 내가 기억하는 공교육이란 주입식 위주인 수업에 시험을 보고 등수를 매기고 그걸 또 공개적으로 처형하듯 발표하는 것이었다.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도 선생님이 시험을 가장 잘 본 학생의 이름을 부른 뒤 교탁 앞으로 나와 제일 예쁜 지우개를 골라가게 하셨다. 그 아이의 뒷통수엔 부러움이 가득한 아이들의 눈이 꽂혔다.
고등학생 때는 전교 30등까지를 모아서 소위 공부 잘하는 반을 따로 모아놨었는데, 매학기마다 그 인원이 ‘물갈이’ 되었었다. ‘물갈이’를 알리는 방식은 담당 선생님이 아침 조회 시간에 교실의 문을 열고 그 반에 배정된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는 식이었다. 물론 이런 방식이 경쟁을 부추겨 공부하게끔 하는 동기가 될 수 있겠지만, 학생들을 획일적으로 판단하는 잣대가 초등학생 때부터 적용된다는 것은 늘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그 나이 때는 어떤 틀에 갇히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탐구하며 자신과 주변 환경을 알아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을 만나는 건 즐거웠지만 학교라는 공간 자체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건 폭력적이라고까지 느껴지는 그 획일적인 잣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학교는 변화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건 혁신 학교로 지정된 초등학교에 방문을 갔었던 때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략 10년이 지난 후 방문한 학교는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우선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쾌활했다. 학교가 남향인가, 괜히 이렇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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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켜보며 일반적인 학교와 다른 교육체제가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차차 알게 되었다. 가장 눈에 띈 차이점은 블록타임제였다. 블록타임제는 2교시를 한 블록으로 가정한 뒤 80분동안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원래는 1교시를 40분 동안 진행하고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러한 타임제의 가장 큰 장점은 자리에 앉아 교과서 위주로 수업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보다 다양한 학습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가장 신기했던 점은 교과서는 사물함에 있지만 수업 시간에 꺼내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학교는 교과서를 통해 각 과목을 따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목을 합쳐서 학습하는 식으로 수업이 행해지고 있었기에 교과서가 필요 없었다. 예를 들어 과학과 미술 과목을 합쳐서 생물에 대해 학습하고 난 뒤, 이에 관련해 나비의 형태를 지점토로 만들어보는 식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는 식으로 국어 과목과 연관시킨다. 활동이 끝난 후엔 교실에 모두의 작품을 전시해놓아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블록타임제이기에 상대적으로 긴 호흡으로 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심지어 교실을 벗어나서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식물을 관찰하곤 했다. 처음에 나는 이 점이 충격적이었는데, 이렇게 자유로운 방식의 교육이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한편, 교과서를 거의 사용하지 않기에 수업에서 활용할 학습 자료가 필요하다. 이 자료는 동일한 학년을 담당하는 교사들이 공동체가 되어서 각자 맡은 학습 자료를 제작하고 이를 공유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수업 방식이나 자료에 대한 회의가 매우 수평적으로 이루어지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혁신 학교에서 취하는 방식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취 기준을 근거로 수업 자료가 만들어지긴 하지만, 강압적이지 않은 수업 방식으로 인해 학생들이 학습에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로 선생님의 말을 듣고 교과서에 적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던 나의 기억을 더듬어본다면, 이 학교의 아이들은 훨씬 능동적이고 창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방식 역시 완벽한 교육 방식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른 교육 체제가 나올 것이고, 이를 시행해보며 수정을 거쳐야할 것이며, 어쩌면 목적에 따라 여러 교육 방식을 절충해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에 비해선 더 밝고 자유로워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한국 교육계가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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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세계에 대해 회의적으로 본다. 나도 미래가 현재보단 유토피아일 것이라고 쉽게 확신할 순 없다. 앞서 언급한 교육을 비롯하여 과거보다 나아진 지점은 분명히 있으나 이 사실이 인간 개개인의 행복과 연결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책 『사피엔스』에서 흥미로웠던 대목 중 하나는 농업 혁명이 과연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을까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이었다. 인간들은 더 많은 농작물을 얻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했고 허리 디스크를 얻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작가의 의견이 흥미로웠다. 항상 과거보다 현재가 낫다고 생각해왔는데 과거에 비해 현재를 항상 이상적이라고 보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 세계라는 것 자체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도 참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서두에서 말했듯 나는 다소 낭만적으로 인류가 더 나은 세계를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끊임없는 논쟁이 멈추지 않는다면 말이다. 예를 들어 연애를 할 때도 가장 관계가 위태로운 상황은, 지난한 다툼이 지속되는 것이 아닌 소통의 단절이라고 한다. 즉, 상대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확신하며 대화를 줄여나갈 때 그 관계의 미래는 없는 것이다.
세계는 과거도 힘들고 앞으로도 힘들 테지만, 우리가 겪어온 문제점들을 개선하고자 노력한다면, 과거의 행태를 답습하는 것보다 미래에 무언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아주 먼 미래를 상상해보았을 때, 그 미래는 현재에 비해 이상향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 거창한 투쟁 역시 좋으나 모두가 그럴 수 있는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관심이 가는 문제부터 변화를 향해 사소하게라도 움직일 때, 비로소 이상 세계에 대한 희망이 있지 않을까. 오늘도 이 믿음을 유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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