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우리를 향해 열려 있어!

  깨달음을 얻은 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이었다. 문득 내가 하늘에 대해서 너무 안 좋게만 생각한 것 같다는 생각에 하늘한테 좀 미안해지는 날이 있었다. 하늘이 사람도 아닌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까지도 하늘과 인간 사이 갑을 관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너무 몰입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하늘이 우리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는데, 이제는 좀 좋은 점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하늘을 쳐다볼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늘을 똑바로 바라볼 시간도 부족하면서 우리가 하는 말에는 하늘이 자주 들어간다. 그중 하늘에 희망을 담은 말은 대부분 노래 가사가 된다.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어’

  가사에 ‘하늘’이 들어가는 노래는 많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이 가사를 가장 좋아한다. 일단 전반적인 가사 내용이 긍정적이라서,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고, 내 곁에는 네가 있다는 가사를 읊으면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조금은 힘이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 가사를 좋아하는 주된 이유는, 노래를 듣다 보면 맑은 하늘과 모래사장, 그리고 쏴아- 밀려오는 파도가 눈앞에 저절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가사를 두고 며칠 전까지 하늘을 그렇게 무시무시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에 더욱 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생각해 보자고. 하늘탈트 붕괴에 지친 나는, 이번에는 딱 눈앞에 보이는 푸른 하늘만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하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탁 트인 푸른색의 풍경이다. 거기에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 몇 점이 올려진다면 최상의 날씨, 최상의 하늘이 될 것이다. 이제 그 최상의 하늘을 올려다보는 상상을 해 보자. 기분이 무거운가? 누군가 나를 위에서 짓누르는 느낌이 드는가?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막막할 때 하늘을 올려다보면 오히려 숨통이 트인다. 맑은 하늘을 볼 때면 내 기분이 덩달아 밝아지기도 한다. 예쁜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의 심리가 다 그렇듯이, 사람들이 하늘 사진을 찍는 이유도 이런 느낌과 어느 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나에게 하늘은 그냥 그런 존재인 것이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존재. 하늘이 예쁘면 기분이 조크든요.

  또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하늘은 그냥 흘러가는 존재다.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말이 있듯이, 하늘은 정말 무심하다. 무심한 것 같으면서 무던하기까지 하다. 우리가 하루 종일 무엇을 하든 홀로 흘러간다. 우리가 멈춰 있어도 하늘은 흐르고, 우리가 뛰어도 하늘은 우리에게 맞추지 않는다. 제 속도에 맞춰 흐르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흐르다가 어느 날 맑은 하늘이 찾아오면 우리는 기뻐하고, 흐린 하늘이 찾아오면 잠시 다운되기도 하고. 하늘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하늘에 맞춰 갈 뿐이다. 그러다 우리가 높은 산에 오르거나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가까이 닿게 되면 또 그러려니, 막지도 않고 우리를 포용해 준다. 자기 페이스에 맞게 살면서 예상치 못한 침입자까지 반겨 주는 존재라니. 하늘답게 꽤 마음이 넓다.

  상하관계를 깨달아도 달리 인간의 힘으로 고칠 수는 없고,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순리에 가까운 관계. 평생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무언가가 있지만 그것이 딱히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 것 같은 묘한 관계. 그것이 하늘과 인간의 관계다. 만약 유리천장과 같이 내가 그걸 깨부수고 어떻게든 올라가도 그닥 환영받지 못할 것 같은 존재가 내 위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면 굉장히 달갑지 않을 것 같지만, 하늘은 이런 것과는 결이 다른 갑甲이다. 하늘은 내가 위로 올라가도 언제든 기꺼이 길을 열어 주는 존재. 정해진 선만 지킨다면 언제든 올라오는 것을 막지 않는 쿨한 갑이다. 평생 올라서지 못할 존재가 나의 위에 있는 것은 자칫 무력해질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존재가 이런 무던함을 가진 하늘이라면… 꽤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날은 왠지 이렇게 하늘의 편을 살짝 들어 주고 싶은 날이었다.

  정신없이 이런저런 생각들을 늘어놓고 나서 내린 결론은 한 가지였다. 결국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하늘이 내 위에 있어서 무력해진다느니, 하늘이 무섭다느니, 이런 소리만 하다가 별안간 며칠 후에는 생각을 고쳐먹어서 ‘하늘은 정말 마음 넓은 것 같아…’라며 칭찬하는 글을 쓰다니. 이 글을 하늘이 보면 어떤 반응을 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 갈대 같은 인간을 다 봤나…’라고 할까? 아니면 자신의 양면을 들켜 버려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어느 쪽이든 흥미로울 것 같기는 하다. 내일 비가 온다면 하늘이 이 글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의미겠지. 그렇다면 미안하다고 편지라도 써야겠다.

  아무리 마음이 갈대 같아도 이제는 하늘에 대한 생각을 하나로 정리해야 할 것 같다. 하늘의 두 가지 면을 다 생각하다 보면 조만간 다시 하늘탈트 붕괴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하늘에 대한 생각을 말할 기회가 또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굳이 내 인생에서의 ‘하늘’의 의미를 이야기할 날이 온다면, 이왕이면 후자를 생각해야겠다. 안착한여성들의 작가 소개 글을 보았다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는 나름의 행복과 낭만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애쓰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나에게는 후자의 의미가 훨씬 어울리지 않나.

  여기까지 읽느라 수고가 많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하늘에 대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멋대로 정의해 버린 한 사람의 독백을 이렇게나 차분히 읽어 주어서 감사하다. 작은 선물이라도 남기고픈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화면을 벽 삼아 만난 사이이기에 선물을 마음껏 줄 수 없는 점이 유감이다. 그래도 이 고마운 마음을 말로라도 표현하고 싶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한 번쯤 하늘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았기를,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이 글을 읽은 오늘은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리며 잠들길 바란다.

  힘들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생각이 많아질 때쯤 하늘을 보면서 멍을 때리면 머릿속을 환기할 수 있어서 그런 걸까. 여러분도 앞으로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며 하루를 보내길 바란다. 이왕이면 하늘에게 고민도 털어놓고, 멍때리는 김에 안 좋은 생각도 전부 하늘로 날려 버린다면 더 좋겠다.

  하늘 아래에서는 그래도 된다.

  하늘은 언제나 우릴 향해 열려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