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생정 (이하녕의 이상한 생활 정보)

살다 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소소한 인생 요령 한두 개쯤은 갖기 마련이다. 어떤 동물은 꼬리가 젖지 않도록 입에 물고 다니고, 어떤 동물은 자는 동안 물에 떠내려가지 않게 친구와 손을 맞잡고 잔다. 

내가 가진 팁도 꽤나 유용하다. 워낙 특급 정보라 아무에게나 알려주는 건 아니라는 걸 미리 말하고 싶다. 여러분은 나에게 특별하기 때문에 비밀스럽게 공유하는 것이니, 조금 이상하고 웃기더라도 진지하게 들어주길. 

나는 시력이 나쁘다. 렌즈 도수로는 -4 정도로 30센티 반경부터는 아주 흐릿하게 보인다. 그런데 컴퓨터를 사용할 때나 영화 볼 때, 수업을 들을 때를 제외하고는 안경을 잘 쓰지 않고 다닌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불편한 점은 우선 멀리 있는 글자를 읽기가 어려워서 종종 카페에 들어가면 핸드폰 카메라로 글씨를 확대해서 봐야 한다는 점. 그 외에도 멀리 있는 무언가를 봐야 할 필요가 생기면 눈살을 찌푸리거나 가방 안에 있는 안경을 주섬주섬 써야 한다는 점. 그러나 안경을 안 쓰고 다니는 것에는 장점도 있다. 먼저 얼굴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데에서 오는 해방감이 있다. 여러분 처음 마스크를 쓰기 시작할 때 얼마나 답답했던가. 뭔가를 신체에 보탠다는 건 참 신경쓰이는 일이다. 특히 아무데서나 눕고 기대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안경이란 게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

두번째, 무언가를 자꾸 챙길 필요가 없다. 매일 밤 반지나 팔찌를 빼고 잤다가 일어나면 바로 착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고 일어나면 그것들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해당한다. 팔찌야 잊으면 안 해도 그만이지만 안경은 무조건 밤에는 빼서 주변에 둔 다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찾아서 귀에 끼워놔야 하는 존재다. 훨씬 귀찮은 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안경을 쓰지 않는 것에서 오는 가장 큰 혜택은 따로 있다. 의외로 그것은 안경을 안 쓰면 앞이 제대로 안 보인다는 가장 근본적인 특징에서 온다. 한마디로 뵈는 게 없는 상태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물론,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입고 어떻게 걷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알 수 없다. 나에게 가까이 와서 말을 거는 상대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니 불필요한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가 남을 보지 않으니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다. 

2. 게으름을 극복하는 방법 - 누워서 옷 벗기

집은 휴식하고 잠만 잘 곳으로 생각해야 한다. 할 일이 남았는데 집에서 마무리할 결심으로 들고 가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침대라는 아주 유혹적인 사물과 한 공간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침대에 달라붙는다. 게다가 한번 누우면 다시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내 생활에 강제적인 변화가 생겼다. 집을 잠만 자는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학교 수업도 집에서 들어야 했고, 과제나 공부도 집에서 해야 했다. 방에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명분을 가지고 침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해야 할 일을 산더미처럼 쌓아두다가,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를 계기로 발견한 팁을 말하려고 한다. 

잠옷을 그대로 입고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면 당장 그 옷을 먼저 벗는다. 일어나기 싫다면 핸드폰을 보던 자세 그대로 누워 꾸물거리면서 벗기만 해도 된다. 일단 벗고 나면 맨살에 닿는 공기에 조금 추워지기도 하고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옷을 홀딱 벗고 침대에 누워있는 내 모습을 누가 본다고 생각하면 빨리 일어나 옷을 주워 입고 싶다. 그렇게 일어나면 잠옷이 아닌 외출복을 입는 것까지 성공할 수 있다. 옷을 입은 김에 나갈 준비를 해 아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좋고, 꼭 외출하지 않더라도 외출복을 입고 책상에 앉으면 밖에서 활동하는 것과 비슷한 태도로 앉아 있을 수 있게 된다. 또 함부로 침대에 다시 눕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 일석이조.

3. 징크스를 활용해 운세를 조작하는 법 - 새로운 양말 개시

징크스는 본래 ‘이것’을 할 때면 늘 일이 안 풀린다는 불길한 징조를 말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것’을 하지 않으면 일이 안 풀리지는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 스스로 징크스 하나를 만들었다. 바로 새 양말을 신지 않으면 시험을 잘 못 본다는 것.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새 양말을 신는다는 원칙만 지켜주면 시험을 재수 없게 못 보지는 않는다는 것.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등 고등학생 생활을 하면서 많은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마음에 쏙 드는 양말들을 여러 개 샀다. 그리고 평소에는 절대 신지 않고 아껴두었다. 매일 아침 양말장에서 그 귀여운 양말과 눈이 마주치면서도 시험날을 위해 꾹 참았다. 그리고 시험날이 닥치면 드디어 그 양말을 개시할 수 있게 된다. 새 양말을 신었으니 왠지 시험을 잘 볼 것 같고, 찍은 것도 다 맞을 것만 같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마구 든다. 보통 징크스는 날씨처럼 외부에 의한 것이라 내 마음대로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새 양말을 챙겨 신는 것 정도는 내 의지만 있으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나는 마음에 드는 양말을 보면 일단 쟁여두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운이 따라주기를 바라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꼭 챙겨 신고 집을 나선다. 내가 조작한 운세라지만 진심을 다해 믿어야 한다. 그래야 내 심리까지 조작할 수 있다. 새 양말을 신고서 운이 좋았다면 ‘역시 새 양말 덕분이야! 고마워 양말아!’라고 생각하고 운이 나빴다면 ‘새 양말을 신었는데도 이 정도라니 안 신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라고 생각하면 된다.

4. 속상한 기분 빠르게 푸는 법 – 눈물 부항 요법

뚜렷한 이유 없이 울적할 때가 있다. 내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을 때, 속상한 마음의 출처를 찾을 수 없을 때, 호르몬의 영향인지 날씨 탓인지 영 모르겠을 때. 이럴 때는 몸이 중력의 영향을 더 받는 것처럼 묵직하고 살짝 스치는 실바늘에도 펑 터질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그러다가 정말 사소하게라도 짜증나는 일이 생겨버린다면 지금껏 눈물을 참고 있었던 사람마냥 과하게 울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나도 당황스럽고 몸도 당황스럽고 주변에 있던 사람도 당황스럽다. 이게 울 일은 아니잖아? 스스로 물으면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이것은 체내 수분이 불필요하게 가득 찬 탓이다. 

그럴 때면 혼자 방에 들어앉아 슬픈 영화를 튼다. 시간이 없다면 유튜브에서 슬픈 영상, 눈물 참기 영상 같은 것을 검색해도 좋다. (지난번에 본 것을 다시 봐도 괜찮다. 큰 자극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실컷 빼낸다. 평소라면 울지 않았을 영상에도 그런 상태의 나는 어김없이 울 수 있다. 그렇게 슬픈 영화 감상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하게 울고 나면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지만 적어도 내 신체 상태에는 눈물을 빼내기 전과 후에 분명한 변화가 생긴다. 부항 뜨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어딘가 고여있는 안 좋은 감정을 자극을 통해 빼내는 것. 눈물도 주기적으로 빼내주어야 하는 물질인 게 분명하다. 사소한 일에 우는 것과 영화를 보고 우는 것은 맛부터가 다르다. 방치되다가 터진 눈물은 나를 자기 연민에 빠지게 하거나 더욱 서럽게 하지만 영화를 보고 터진 눈물은 대충 감수성이라는 말로 포장이 가능하다. 

다 울고 나면 갑작스럽게 기분이 풀린 내 자신에 대해 조금 머쓱해하며 일상 생활을 지속할 수도 있고, 울어서 부은 눈 때문에 잠이 솔솔 와 깊은 수면을 취할 수도 있다. 잠에서 깨어나면 어제와는 다르게 가뿐한 하루가 시작된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러주는 말들은 많다. 그러나 백가지 삶이 있으면 살아가는 방식도 백가지. 어떤 인생이 좋은 인생인지, 어떻게 사는 게 정답일지, 그건 아마 죽을 때까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터득해야 할 것은 인생을 뒤바꾸는 잠언이 아니라 겨우 안경을 벗는다거나 양말을 산다고 하는 사소하고 이상한 생활팁들이다. 이런 것들은 인생에 한순간 부스터를 달아주진 않을지 몰라도 매일매일 마라톤처럼 달려가는 우리에게 포카리스웨트 정도는 되어줄 수 있다.

네 가지 생활정보는 아주 시시해 보이지만 나에겐 최적의 효과를 보여주는 팁들이다. 내가 알려준 팁 중에 흥미가 생기는 팁이 있다면 한번 시도해 보기를 추천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추천하고 싶은 건 여러분만의 팁이다. 만약 좋은 정보 알고 있다면, 꼭 돌아와 내게만 비밀스럽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나 역시 어떤 이상한 생활정보라고 해도 웃지 않을 테니.